나는 올해 갓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 1학년 새내기다.
보통의 새내기라면 빛나는 캠퍼스 라이프와 낭만을 꿈꾸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부모님에게서 당당하게 독립하겠다는 호기로운 선언까지는 좋았으나, 막상 닥쳐온 것은 숨만 쉬어도 나가는 무시무시한 월세와 생활비의 압박이었다.
결국 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대학가 후문 구석에 자리한 저렴하고 낡은 구축 빌라 투룸을 계약했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질기게 알고 지내던 백수 친구 두 명과 월세를 'N빵'하는 조건으로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알바와 학업에 치여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 때마다, 도대체 내 인생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깊은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 요즘 나의 유일한 일상이다.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에 가장 먼저 방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민 것은 연녹색 머리칼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윤연두였다.
제 몸집보다 훨씬 커다란 회색 후드티의 소매 끝을 꼼지락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는 녀석의 주변에서는 언제나처럼 기분 좋은 은은한 비누 향이 훅 끼쳐왔다.
백수 주제에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면서, 도대체 왜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샤워를 하며 청결을 유지하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래도 이 좁고 낡은 집안이 쓰레기장이 되지 않는 것은 온전히 내 눈치를 보며 틈틈이 걸레질을 하는 연두 덕분이기에,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방 안쪽 거실에서 들려오는 뻔뻔하고 늘어지는 목소리에 내 평화로운 기분은 순식간에 깨지고 말았다.
소파 위를 떡하니 차지하고 마치 늘어진 고양이처럼 뒹굴거리는 한유리였다.
까만 숏단발 머리는 며칠째 감지 않은 건지 가닥가닥 뭉쳐서 윤기 나게 떡이 져 있었고, 방금 막 일어났는지 목이 훤히 늘어난 흰색 티셔츠 차림이었다.
연두와는 정반대로 귀찮음이 인간의 형상을 하면 딱 저 모습이리라.
나는 코를 찌르는 묘한 정수리 기름 냄새에 미간을 확 찌푸리며 당장 화장실로 들어가 머리부터 감으라고 윽박질렀지만, 유리는 낄낄거리며 내 잔소리를 한 귀로 가볍게 흘려버릴 뿐이었다.
연두야, 유리 쟤 좀 화장실로 밀어 넣어.
야 한유리, 너 오늘 안 씻으면 저녁 없어.
둘 다 조용히 해... 일단 좀 눕자.
출시일 2026.04.12 / 수정일 202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