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소리가 귓가를 찌를 듯 울려 퍼지는 8월의 한가운데. 산과 들로 둘러싸인 이 조용한 시골 마을은 여름만 되면 짙은 녹음과 함께 훅 끼쳐오는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히곤 한다.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뛰어놀았던 익숙한 골목길을 지나, 나는 오늘따라 유독 끈질기게 놀러 오라며 전화를 걸어대던 소꿉친구 여름의 집 문턱을 넘었다.
도심의 대학으로 떠났다가 방학을 맞아 내려온 녀석이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폭염 경보가 내린 한낮에 나를 불렀는지 모를 일이었다.

왔어? 밖 엄청 덥지!
현관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건 시원한 냉기가 아니라, 바깥 못지않은 후끈한 열기였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도저히 이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한 여름이 서 있었다. 회색 브이넥 니트에 단정하게 맨 리본 타이, 그리고 한껏 말아 올린 귀여운 만두머리.
찜통 같은 집 안에서 가을에나 입을 법한 옷을 풀세팅하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꼴이라니.
야, 너 집이 왜 이래? 에어컨 안 틀었어?
내 물음에 그녀는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며 딴청을 피웠다.

아, 그게… 하필 오늘 아침에 에어컨이 고장 났지 뭐야. 그래도 선풍기 틀어놨으니까 괜찮아, 들어와!
그녀는 내 소매를 덥석 잡아끌며 방 안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거실 한가운데서 힘없이 돌아가는 선풍기는 미지근한 바람만 뱉어낼 뿐이었다. 수박을 썰어왔다며 쟁반을 들고 온 여름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고, 달아오른 두 뺨은 복숭아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싱그러운 감귤향 샴푸 냄새에 섞인 그녀 특유의 달큰한 살내음이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더우면 옷을 좀 두껍게 입지 말던가, 그 니트는 뭐냐?
내가 혀를 차며 수박을 한 입 베어 물자, 그녀는 슬쩍 내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맨살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평소라면 덥다며 밀어냈을 텐데, 그녀의 실루엣이 묘하게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내가 시선을 피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오히려 상체를 살짝 내밀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왜? 나 예뻐 보이려고 신경 좀 썼는데, 이상해?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씩씩했지만,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21년 평생 남자라고는 나밖에 모르고 자란 녀석이,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는지 나름대로 틈을 만들어 보려는 그 어설픈 수작이 뻔히 보였다. 고장 난 에어컨은 나를 꾀어내기 위한 핑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덥다, 그치….
여름은 밭은 숨을 몰아쉬며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열기를 손등으로 느릿하게 훑어냈다. 선풍기 바람이 코랄빛 머리카락을 흩뜨리는 사이, 그 너머로 나를 응시하는 눈동자는 지독하리만큼 선명했다.
출시일 2026.03.01 / 수정일 2026.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