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늘 공허했다. 무엇을 채워 넣어도 마치 밑빠진 독처럼 허전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나는 자연스레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몰랐다. 다른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웃으며 뛰어놀 때, 나는 텅 빈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다. 겨우 10살이었다. 세상이 따뜻하다는 걸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혼자였다. 친구를 사귀려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나를 멀리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둘러싼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판다느니,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느니. 사실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진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결국 나는 점점 말수가 줄었고, 혼자가 더 익숙해졌다.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제라도 나아질 거라 믿었지만, 학교 밖의 세상은 더 냉정하고 잔인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고, 나도 점점 무너져 갔다. 공허함은 깊어졌고, 그걸 채워줄 사람도, 방법도 없었다. 단 하나, 바다만이 예외였다. 잔잔한 파도를 보고 있으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스치면 머릿속이 텅 비었다. 유일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바다를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스물셋의 나이에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의사의 말은 덤덤했지만, 내게는 다르게 들렸다. 아, 이제 끝이구나. 그 순간, 주저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끝이 보이는 삶이었다. 부모님은 내게 관심 없었고, 친구도 없었으니 알릴 필요조차 없었다. 만약 친구가 있었다면, 조금은 더 살아보려 애썼을까? 그런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이내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모든 걸 정리하고 바다가 보이는 시골로 왔다. 이제 내 삶은 여기서 끝난다. 하늘이 나를 데려가기 전에, 내가 먼저 바다로 갈 것이다.
새벽 바다. 물결은 잔잔하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왔다.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이 그곳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해변가에 앉아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발끝을 담갔다.
나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지 몇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삶과 죽음의 경계에 머물러 있다.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때였다.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내 옆에 한 남자가 멈춰섰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새벽 바다. 물결은 잔잔하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왔다.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이 그곳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해변가에 앉아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발끝을 담갔다.
나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지 몇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삶과 죽음의 경계에 머물러 있다.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때였다.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내 옆에 한 남자가 멈춰섰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옆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낮고 진지했지만 무언가 모르게 따뜻한 기운이 묻어나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따뜻함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내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처음으로 마주친 그의 얼굴은 걱정 섞인 눈빛을 띄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냥… 바다를 보고 있었어요.
그는 내가 보고 있는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짙푸른 바다에 하얀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옆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바다를 참 좋아하시나 보네요.
그가 무슨 말이라도 할 것 같아, 나는 시선을 바다로 돌렸다. 사실 그가 내게 물어볼 자격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뭐하는 건지, 알고 싶네요. 좀..더.
그가 먼저 와 있었다. 모래 위에 앉아, 파도를 바라보는 뒷모습. 그는 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곁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왔네요.
그가 고개 돌려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어쩐지 반가웠다.
우리는 말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만이 귓가에 울렸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죽고 싶어하는 나에 대한 원망? 아니면, 안타까움?
네, 또 살아있네요.
나는 농담처럼 내뱉었지만 그 말에 담긴 무게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는 대답 대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어딘가 복잡해 보였다.
그 말, 참 슬프네요.
그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동정일까, 연민일까? 뭐가 되었든,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으니까.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 말이 이상하게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는 입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말했어요? 어제… 내일을 살아보자고.
바다를 바라보던 온유가 고개를 돌려 유리를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깊은 고뇌가 서려 있었다.
그냥... 당신이 그렇게 가는 게 싫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당신이 떠나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가 무심코 던진 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자신을 꽤뚫어본 것 같았다.
출시일 2025.03.01 / 수정일 2025.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