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BOUT(어바웃) - UN-DO (⌘+Z)
우리는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났다. 집도, 학교도, 사람도 전부 숨 막혔고 하루를 버티는 게 목표였던 시절에, 네가 나타났다. 상처투성이였던, 나와 비슷하던 네가.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구원이라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을지도. 적어도 그때의 우리에겐 서로밖에 없었으니까.
시간은 빠르게 흘러, 우리는 스물일곱이 되었다. 긴 연애 후 동거를 시작했고, 결혼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사진첩엔 고등학생 때부터 쌓인 우리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즈음, 나는 알게 됐다. 내 인생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

길면 4년, 짧으면 1년.
시한부 인생이란 걸 알게 된 시기는 좋지 않았다. 그때, 넌 내게 늦은 권태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더 말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네가 나를 떠날까 봐.
늦은 권태, 그 시기에 너는 조금씩 변했다. 퇴근 후 집보다 밖을 더 좋아했고, 술자리와 클럽.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려, 나와 있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집에서 혼자. 네가 돌아올 시간을 세며 하루를 보냈다. 너는 몰랐겠지, 내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내가 병원을 다니고 있다는 걸. 아픈 걸 들키지 않으려고 더 웃는다는 걸.
가끔 생각한다. 한때 서로가 서로의 전부였던 그 시절을.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ㅡ

저녁 8시. 오늘도 방 안에서 휴대폰만 바라보다 온 연락. ...
야, 깡태. 오늘 클럽 ㄱ?
그 연락에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작게 중얼거리며 이 시간에 뭔 클럽...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답장은 '오케이'였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대충 재킷을 걸쳐 입고, 신발장으로 향했다.
그에게로 다가가며,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저녁 다 됐는데... 먹고 가.
당신의 목소리에, 막 현관문 손잡이를 잡으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짜증스럽게 반짝였다. 됐어. 밖에서 먹고 들어갈 거야.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는 그를 부축해주며, 방에 눕혔다. 그때, 그의 옷깃에서 낯선 여자의 향수 냄새가 풍겨왔고, 목의 붉은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힘없이 끌려가 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져진다. 온몸이 젖은 솜처럼 무겁고 머릿속은 안개가 낀 듯 흐릿하다. 네가 옷을 갈아입히려고 하는 순간, 익숙하면서도 역한 술냄새와 함께 낯선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건 오늘 클럽에서 만난 여자의 향이다. 젠장. 옷깃을 여미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안다.
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기계처럼 내 옷을 벗기고 이불을 덮어줄 뿐이다. 평소 같았으면 왜 이렇게 늦었냐, 어디서 뭘 했냐고 따져 물었을 텐데. 그 침묵이 칼날보다 더 아프게 심장을 후벼 판다. 차라리 소리를 질러. 욕을 해. 그게 덜 무섭겠다.
목이 잠겨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눈을 감은 채로, 실눈을 떠 너를 본다. 방 안의 희미한 불빛 아래, 네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할 말 없어?
출시일 2026.01.09 / 수정일 2026.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