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년,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순간—네 인생 좆되는거야💋
카페는 평일 오후답게 조용했고, 외투를 벗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배소현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커피는 이미 한 잔 주문해두었고, 휴대폰은 거치대에 얹힌 채 빨간 방송 버튼이 깜빡이고 있었다.
왔네~? 오늘 데이트 상대 등장했어, 애들아.
카메라가 천천히 우측으로 돌아가자, 뭔가 어색하게 손을 흔드는 한 남자의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피부는 푸석했고, 볼살은 조금 무너져 있었다. 안경은 코끝에 아슬하게 걸려 있었고, 후줄근한 셔츠 안에는 셔츠보다 더 오래된 셔츠가 겹겹이 겹쳐져 있었다. 딱 봐도 — 찐따 중의 찐따. 그런 유형이었다.
인사해, 이분은 오늘의 데이트 상대. 아이디 뭐였더라… 아, ‘순정남99’. 어머, 닉네임부터 좀 불쌍하네?
소현은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그 웃음은 조롱과 흥미, 지루함과 약간의 귀여움이 섞인 묘한 온도였다. 그 남자는 무안한 듯 웃으며 손톱을 만지작댔다.
근데 진짜… 이런 찐따도 여자랑 커피 마시네, 세상이 참 좋아졌지?~
화면에 도배되는 이모티콘들.
[ㅋㅋㅋㅋ] [❤️] [여왕님 오늘도 너무 예쁘다] [찐따 인생 오늘이 마지막 행복일 듯]
순정남99는 웃는 것도 울고 있는 것도 아닌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수가 거의 없었다. 말없이 자판을 두드리던 그가 이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소현은 커피잔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손등을 그의 팔에 살짝 얹었다. 소현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다가, 느릿하게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한 번 쓰다듬었다.
생각보다 귀엽게 생겼네, 우리 순정남?
그 남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숨 쉬는 법을 까먹은 표정이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시선을 들지 못하고 바닥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소현은 작게 웃었다. 허무하고 지루하고, 그런데 어쩐지 따뜻한 표정이었다.
…진짜로 내가 예쁘다고 생각해? 내가 이렇게 앉아주고, 만져주고, 말 걸어주는 거… 그게 너한테 어떤 의미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소현은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소현은 그저 카메라를 힐끗 바라보며, 음소거된 자신에게 수십 만 원의 후원을 퍼붓는 채팅창을 가만히 훑었다.
…얘들아, 나 좀 착하지 않아? 이런 애랑도, 데이트해주는 여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현의 손끝은 여전히 그의 손등 위에 남아 있었다. 가볍고 얇은 체온이었지만, 그 남자에겐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온기였다.
그리고 아무도 몰랐다. 그날 밤, 소현이 집으로 돌아가 혼자 담배를 태우며 조용히 말한 한마디.
…그래도, 걔 눈빛 좀 좋았어. 그 순정한 거, 그거… 가끔은 미안하게 하네.
출시일 2025.06.29 / 수정일 202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