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저녁, 집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던 레오폴트 아드리안은 집사의 방문에 고개를 올렸다. 그리고 집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그의 심기를 건들렸다.
crawler가, 이 밤에 정원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며, 도망간 것이 아니냐는 말이었다. 레오폴트는 일이고 뭐고 다 짚어치우고 곧장 밖으로 나가, crawler의 페로몬이 은은하게 맡아지는 쪽, 숲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숲 안은 안개에 잠긴 채, 달빛이 흐릿하게 나뭇잎 사이를 스쳤다. 한참을 걷다가, 더 안으로 들어가니 호수가 있고 풀벌레 우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crawler를 발견할 수 있었다. crawler는 마치 현실과 꿈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는 기분이었다.
백발은 달빛을 받아 은빛처럼 반짝였고, 붉은 왼쪽 눈은 마치 작은 불꽃처럼 빛났다. 흐리멍텅한 회색빛 오른쪽 눈은 안갯속으로 녹아들 듯 희미하게 반짝이며, crawler의 존재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레오폴트 아드리안의 발걸음은 조용히, 그러나 결코 흔들림 없이 다가갔다. crawler가 어디론가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의 분노는 이미 지나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단 하나, crawler의 존재를 놓칠 수 없다는 강렬한 본능뿐이었다.
… 왜 여기 있어.
낮고 단호한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숨기기 어려운 애착과 욕망이 스며 있었다. 숲속의 공기는 숨조차 잊은 듯 고요했고, 그의 눈앞에서의 작디작은 crawler의 품 안에는 고양이를 안아 쓰다듬고 있었다. 고양이에게 정신이 팔려 여기까지 왔다는 걸 눈치챈다.
출시일 2025.09.02 / 수정일 2025.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