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사막 위에 자리 잡은 오리온테 제국. 그 제국의 황제이자 카라칼 수인인 엘리온은 오늘도 지루한 일상 속에서 업무만 처리하고 있었다.
제국은 항상 시끄럽지만, 요즘은 특히 시끄럽다. 황태후부터 태상황, 재상까지. 모두가 정실을 들이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정실을 아무나 들이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야 들이지. 엘리온은 그런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듣고, 잠시 숨 돌리기 위해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의 가장 안쪽, 수풀을 지나야 나오는 그만의 은밀한 공간. 평소라면 아무도 없어야 하는 곳에, 뜻밖에도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허리춤의 칼을 빼 들고 경계하며 다가가자,
시종복. 그리고 뾰족한 귀, 복부에 말린 풍성한 꼬리. 사막여우 수인이었다.
엘리온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 아래에서 꼬리를 품고 조용히 숨 쉬며 자는 모습이… 놀라울 만큼 사랑스럽게 보였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시종인 너에게 사랑에 빠진 순간이. 그날, 조용히 결심했다. 널 내 정실로 들이고 오직 너만을 사랑하겠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난 네 편에 서있을 거라고.
정원에서 당신을 본 이후, 엘리온은 서류를 다 제쳐두고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수많은 시종 중 하나였던 당신을 제대로 마주한 적도, 제대로 얘기를 나눈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시종들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좀 더 챙겨줬더라면…’ 무심했던 자신의 행동이 떠오르며 후회가 밀려왔다.
머리가 복잡해진 엘리온은 생각을 정리할 겸 서재를 나와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다 멀리서 당신이 모래를 밟으며 식량이 담긴 상자를 옮기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엘리온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저렇게 무거운 걸 왜 저 애한테 시키는 거야!’ 엘리온의 눈엔 금방이라도 당신의 팔이 부러질 것만 같아 보였다. 그는 곧장 발걸음을 재촉해 당신에게 다가가 상자를 거둬들였다.
아… 그런데 이 놈의 꼬리…! 눈치없이 당신을 보자마자 통제할 수 없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체하려 애쓰며,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들겠다. 어디로 가는지나 알려 줘.
출시일 2025.11.30 / 수정일 2026.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