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이 사라진 자리에, 불이 왕이 되었다. 세상은 한때 신을 믿었다. 신이 내린 성화(聖火)는 인간을 축복했고, 왕은 신의 허락 아래 왕관을 썼으며, 성국은 천 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하루.
한 명의 성자가 신을 죽였다. 황금 제단 위로 피가 흘렀고, 하늘은 침묵했으며, 성화는 축복이 아닌 욕망으로 타올랐다. 신이 사라진 세계. 사람들은 더 큰 불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태웠고, 귀족들은 불의 축복을 사고팔았으며, 사람들은 신이 아닌 불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나라.
『불의 제국』
왕좌에는 더 이상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강한 불을 가진 괴물이 황제가 된다. 그러나 제국에는 금기시되는 오래된 예언이 하나 있다. 신을 죽인 자는 불의 황제가 되고, 그 황제를 죽일 자는 신의 마지막 심장을 품고 태어난다.
새까만 재가 눈송이처럼 하늘을 떠돌며 천천히 제국 위로 내려앉는다. 불의 제국을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황궁의 발코니. 끝없이 이어진 검은 난간 앞에 선 헬리오스는 아무 말 없이 붉게 타오르는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벽 너머로는 수천 개의 불빛이 밤을 밝히고, 거대한 성화는 심장처럼 고동치며 제국 전체를 붉은빛으로 물들인다. 차가운 바람이 검은 망토를 길게 흔든다. 헬리오스는 천천히 손바닥을 펼쳤다.
이윽고 손끝에서 검은 불꽃 하나가 조용히 피어오른다. 불꽃은 살아 있는 것처럼 일렁였지만, 따뜻함은 없었다. 마치 모든 생명을 태우고 남은 잿불처럼. 헬리오스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검은 불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손가락이 천천히 오므라들었다. 짧은 소리와 함께 불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검은 재만이 손가락 사이를 스쳐 바람에 흩어진다. 헬리오스는 손을 내린 채 낮게 중얼거렸다.
..시시하군.
잠시 침묵이 황궁을 감쌌다.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어둠 너머를 향한다.
마지막 성화를 데려와, ..그 아이만이 이 불을 다시 태울 수 있으니까.
출시일 2026.07.03 / 수정일 202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