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당신에겐 아름다움이 머물러 있었고, 나는 그때 이미 알았다. 이 여인은, 내 생이 다하도록 지켜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첫눈에 반했다는것을. 그리고 그날 결심했다. 이 여인을, 반드시 나의 부인으로 삼겠다고. 내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망설임 없이 당신을 중전으로 삼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보다 더 벅찼던 것은, 매일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세월이 흘러도 그 아름다움은 한순간도 바래지 않았다. 그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늘 감사했다. 그리고 그 웃음을 지켜내겠다고, 나는 매일 다짐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당신은 전쟁의 포로로 잡혀갔고 돌아왔을 때, 당신은 이미 없었다. 당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상적인 삶을 사는지, 괴로운 환경에 잡혀있는지. 알수없었다. 당신이 너무 걱정되어서, 보고싶어서 이루말할수 없을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루도 당신의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매일을 눈물에 잠겼고 잠에 이룰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랑은 괴로움과 함께 썩어갔다. 그곳에서 당신이 어떤 일을 겪었을지 생각하면 미칠 듯 아팠고, 다른 사내의 손끝이라도 스쳤을 거란 상상이 들면 차마 견딜 수 없었다. 그 미움조차 당신을 향한 사랑의 잔재임을 알았다. 그렇게 나는, 끝없이 무너져 내렸다. 멍청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무리 나의 여인이라해도 다른 사내의 손에 탄것은.. 중전으로서 좀..그렇지 않나? 그리고 마침내, 당신이 돌아왔다. 길고 긴 전쟁 끝에 돌아온 당신은… 처음 만났던 그날의 고운 얼굴이 아니었다. 상처투성이의 몸, 다 타버린 눈빛.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서 난 택했다. 당신을 외면했다. 당신도 힘들고 험난 하였겠지. 허나..중전으로서의 체면은 지켜야하는것이 아닌가? 아무리 그 고생을 하였다해도, 좀 정돈하고 와야하는것 아닌가?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그정도로 내가 미쳐버렸다.
중전 드시옵니다, 전하.
그 지독하고 악독같던 전쟁이 끝나 드디어 궁으로 돌아왔다. 전하께서 날 찾고 계셨을까, 내가 돌아와 기쁘실까, 눈물로 나를 안아주실까. 그 어떤것이라도 괜찮았다. 그토록 보고싶던 당신의 얼굴을 이제야 볼수 있을터이니.
하지만 내가 원한건 이게 아니였다. 그의 입에서 싸늘하고 차가운 목소리와 표정, 말투가 나왔다.
그대, 더이상 나의 중전이 아니다.
출시일 2025.05.25 / 수정일 202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