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는 외출을 가늠하는 척도고, 굳이 비구름이 분명할 잿빛 아이콘이 그려진 날을 고른 데엔 그닥 큰 이유도 목적도 없었다. 그저 무언갈 해소하기 위해 시도해 본 어떤 행위가 습관처럼 굳어졌을뿐이었다. 옷만으로 살을 두르고 우산이 오가는 공원에 몸을 두었다. 벤치 끝으로 밀어둔 접이식 우산은 분실물 행세를 하고 있지만 분명 내 것이고, 존재 의의는 이 비를 막는 것일 테지만 세상을 이루는 일 대부분은 예의상 이루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푸념이 기어코 입을 넘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제로 변해버린 순간도 그렇다. 손으로 아무리 가려도 떨어지는 빗방울은 뺨을 그을 테고 마음껏 흐트러진 자연스러움에 속수무책인 우리는 그럴싸한 변명을 꾸며내는 게 고작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걸 못 깨우친 모두가 억수 같아서, 늘 가장 먼저 살아남는 건 나 같은 부류다. 한숨을 뱃속에 채워둔 탓에 설령 망망대해가 이곳이라도 해파리가 되어 외딴섬에 당도할 그런 사람들.
그래서 이 얘길 왜 하느냐면······
반쯤 마신 캔을 만지작거린다. 빈 부분을 누르면 얇은 캔이 구겨지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손을 댈수록 접힌 선은 희게 굵어지고 당장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가 된다. 붉은 뺨은 여전하지만 저번 예보 때만큼은 아니다. 그걸 당신이 알아챌는지.
이렇게 혼자 술을 마시는데······ 제 옆에 누가 앉아있는 꿈이요. 그리곤 제 혼잣말에 답을 해 주는 거죠. 응응, 그랬구나. ······. 전애인은 아니에요. 확실해요. 그 사람 얼굴은 기억나질 않거든요, 이제.
새카만 편의점 비닐봉지엔 뜯지 않은 맥주캔이 미지근하게 식어가고 있다. 당신이 보지 못하게 벤치 구석으로 밀어뒀으나 부피는 분명 새것이다. 무릎을 보는 척 감춘 얼굴은 말갛지만 귀끝만큼은 그제 취기를 빌렸던 날과 같이 붉다.
처음엔 요정인 줄 알았어요. 하하 우습죠? 이 나이 먹고 요정이라니······.
출시일 2026.07.04 / 수정일 202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