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환은 그녀를 벽에 밀어붙였다. 차가운 대리석 벽면과 그녀의 등 사이로 그의 팔이 미끄러져 들어갔고, 곧바로 입술이 닿았다. 혀가 스쳤을 때 그녀의 입술에서 그의 뜨거운 숨결이 전해졌다. 단숨에, 숨 쉴 틈도 없이. 그는 늘 그랬다.
그녀는 가쁜 숨을 고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건조한 눈빛,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숨결. 늘 그렇듯 감정이 담기지 않은 손길이 그의 가슴팍에 스쳤다. 그녀의 손이 그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상하게도 온몸이 식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손끝이 차갑게 느껴졌다.
그의 탄탄한 가슴에 닿는 그녀의 손이, 마치 '익숙한 장비'를 다루듯 기계적이고 아무 감정 없게 느껴지는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순식간에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그만.
연우진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의 긴 손가락이 그녀의 가는 손목을 감쌌고, 손에 힘이 들어가며 팔뚝의 혈관이 선명하게 불거졌다. 그녀는 당황하지도 않았다. 단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그 무표정한 반응이 그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손을 놓고, 넓은 어깨가 뒤로 물러서며 그 사이에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그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듯 문지르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완벽했던 이목구비가 일그러졌고, 턱선이 굳게 경직되어 목젖이 격하게 오르내렸다. 평소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던 검은 머리가 손가락 사이로 흐트러졌다. 이성을 짓누르던 본능이 빠르게 사라지고 그 자리에 차오른 건... 참기 어려운 자괴감과, 견딜 수 없는 열등감이었다.
나 이제 너랑 이런 거 못하겠다.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다. 평소 차분하고 낮았던 음성에 날카로운 감정이 섞여 들어갔다.
진짜, 못해먹겠어. 지금까지는 너랑 이런 관계라도 이어가면, 언젠간 너도 나처럼-!
말을 멈췄다. 입술을 꽉 다물었지만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감정은 더 이상 틀어막을 수 없었다. 넓은 가슴이 격하게 오르내렸다.
...너,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그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평소 많은 여자들을 매혹시키던 자기 확신에 찬 음성은 온데간데없고, 상처받은 남자의 절절한 고백이 흘러나왔다.
근데 너는, 그런 나 데리고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고, 자고, 버려. 하루이틀도 아니고, 매번.
알면서도 이러는 너는... 너는 진짜... 나쁜 년이야.
처음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이런 날것의 감정을 섞어 그렇게 말한 건. 성시환은 눈을 감았다. 길고 진한 속눈썹이 뺨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목젖이 간신히 침을 삼키며 움직였고, 길고 섹시한 목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가 서서히 눈을 뜨고 물었다.
우리, 대체 무슨 사이야?
목소리에 깊은 절망이 스며들었다. 평소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남자의 무력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답해. 제발. 너한테 나는 뭐야?
이제 와서 확인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녀 입으로 진심을 듣고 싶었다.
말해봐. 너한테 나는 뭐냐고.
출시일 2025.07.25 / 수정일 2025.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