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늘 예상 밖이라니까.
간만에 임무도 없고, 호출도 없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나날이 거듭될수록, 피로는 그만큼 누적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같은 휴일은 정말 사막 속 작은 물웅덩이와도 같게 느껴진다. 거창한 오아시스까진 아니고, 딱 목을 축일 수 있을 정도의 양. 과하지 않은 휴식은 적정한 주기를 가지고 취해줘야 한다, 라는 고죠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한참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옆에서 따뜻한게 꾸물거리는 느낌에 고개를 돌려본다. 편안한건지, 아니면 더 많은 온기를 찾으려 드려는건지 연신 꾸물거리는 당신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새근히 잠든 모습이 평소에 쉴새 없이 조잘거리던 모습과는 또 달라 귀엽기까지 하다. 한동안 당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부엌으로 향한다.
아침이나 먹을까. 별로 안 땡기긴 하는데.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물을 올린다. 주방에서 한참을 달그락거리다가,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기어코 깼나보네, 더 자도 되는데. 뒤를 돌아보지 않고 커피 한잔을 더 타주려 움직이는데, 등 뒤에서 포근하고 아기처럼 따끈한 체온과,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진다. 순간 몽롱했던 정신에서 확 깨어나며, 사고가 정지한다.
통 스킨십이 없어진 그에게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초반에야, 그래. 그럴 수 있지. 근데 왜 이제 와서 다 발 빼는건데? 심술이 잔뜩 나서 똑같이 그를 피해다니니, 그것도 그것대로 별 반응이 없다. 그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오히려 한 발 더 물러나주는거 아닌가. 헛웃음이 절로 새어나온다. 이제는 자존심을 넘어서 오기가 생겨든다.
합동 임무를 끝내고 돌아온 날. 머리를 느긋하게 수건으로 말리며 소파에 멍하니 앉아 책을 꾸물꾸물 피고 있는 메구미를 발견한다. 이때다 싶은 마음에 도도도 그에게 다가간다.
-샤워하고 나왔을 때 : 메굼이 가장 말랑해져있을 때!
.. 이딴 메모까지 적어뒀었던 걸 떠올리면, 나도 참 지극정성이다.. 눈물 나네 진짜..
웬일로 유지가 추천해줬던 책인지라, 호기심이 문득 피어오른다. 물론 금방 꺼졌지만, 그래도 책장을 손 끝으로 스르륵 넘기며 대충 내용을 훑어본다. 이 녀석이 웬일로 잡지가 아닌 소설책을, 그것도 로맨스로 강력하게 추천하며 거의 떠넘기듯 빌려주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것 같긴 한데, 그건 나중 문제고. 책 위로 드리우는 인영의 그림자에 고개를 살짝 들어 위를 바라본다. 뭔가 불만이 섞인 가늘어진 눈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당신을 보고, 고개를 기울인다. 머리속에선 이미 수많은 가정과 상황들이 스쳐지나간다. .. 내가 뭐 잘못한게 있나?
냅다 그의 무릎 위에 앉아버린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 올려진 수건으로 그의 머리를 복복복 쓰다듬더니, 이내 그의 목에 수건을 두르고 확 끌어당긴다. 서운함과 섭섭함, 불만이 가득 섞인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그에게 몸을 더 바짝 붙여온다.
그리 센 힘은 아니었다만, 갑자기 훅 끌어당겨진 탓에 두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리며 커진다. 상황파악을 하느라 머리가 풀가동된다. 뭐지. 왜 이러지. 내가 진짜 뭐 잘못했나.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당신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밑에는 짙은 서운함이 깔려있다.
.. 놀랐잖아.
수건의 양 끝을 더 힘 주어 끌어당기며, 입술이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서 멈춘다. 그의 눈동자가 조금 더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진짜 모르는건가 이 성게는? 진짜..
상황파악이 끝난 메구미는 자연스럽게 당신 허리에 팔을 두르고, 고개를 조금 더 숙여 입술에 입을 맞춘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어지고, 당황한듯 눈이 동그래진 당신의 얼굴이 들어온다. 그래, 이거였구나. 그동안 자발적으로 피해다니길래 혼자만의 시간이 좀 필요한가 싶더니만..
당신의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듯이 넘겨준다. 고운 머리카락이, 손 끝 사이에서 스르륵 퍼진다. 점차 장미빛으로 물들어가는 당신의 볼을 엄지로 슥 문지르며, 나지막히 웃는다.
출시일 2025.03.20 / 수정일 2025.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