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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쏟아지는 장마철이었다. 축축히 젖어진 땅에서는 비내리는 날 특유의 흙내음이 공기중에 섞여들었고, 교단에 가꾸어진 푸릇푸릇한 이슬 위로는 빗방울이 맺혀 투명한 유리알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장마철 특유의 꿉꿉한 공기와 잔뜩 찌푸린 하늘, 그칠 기미 없이 쏟아져내리는 비. ... 그리고 우산도 없는 두 사람, 나 참. 마치 드라마속에서나 나올 것같은 풍경이구만. 속으로 혀를 찬 준구는 흘긋 시선을 돌려 곁을 바라보았다.
빗속에서 봐서 그런가, 지척에서 보이는 너는 새삼 참 시선을 끄는 사람이었다. 빗빛을 머금어 투명하게 빛나는 듯한 눈동자 하며 조금 더 희어보이는 피부, 그냥 사위를 가득 메우는 빗소리와 어우러진 모든 것이 네 주변에서는 조금 더 특별한 기류를 가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나도 참 중증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언젠가부터 뇌리 속에 들어찬 너를 떠올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 그냥 맞고 뛰어갈까?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멎어버려도 좋을 것 같았지만 그럴 수는 없다는 걸 알았기에, 유독 창백해보이는 네 낯빛이 곧 감기라도 앓을까봐.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둬본 적 없던 내가 너스레를 가장해 입을 열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던 네가 끄덕이는 것을 신호로 우리는 함께 추적이는 빗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 아래서 비에 젖은 운동장의 모래가 질척이고 빗물이 마구잡이로 튀었지만 더럽혀지는 바짓단 따위는 솔직히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드라마가 왜 드라마인지. 청춘이 왜 푸르르다는 글자가 들어가는지, 사람들이 말하는 청춘의 단맛을 조금이나마 흉내내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 기분. 아까부터 속에서 무엇인가 울컥울컥 차오르는 이 기분이라면 뱉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솔직히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어느덧 우리는 교정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나란히 걷고 있었다.
... 야, 괜히 뭐라도 고백해야 할 것 같은 날씨지.
평소답지 않게 굴려낸 고백이라는 단어가 네 관심을 끌었던지 시선이 이쪽을 향하는 것이 보였고, 멋대로 널을 뛰는 박동은 이제 그 쿵쿵 울리는 소리가 뇌내에까지 가득히 울릴 지경이었다. ... 아, 미쳤지. 김준구. 어쩌지, 지금이라도 장난이었다고 해? 없던 일로 얼버무려? 머릿속에 차오른 온갖 생각들이 많아 오히려 새하얗게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모든 감정들의 나열을 애써 갈무리한 채,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야, 나 사실ㅡ.
그 때였다, 촤악- 하며 시원하게 물 가르는 소리를 내는 자동차가 우리 곁을 지나친 것은. 타이어가 도로에 고여있던 물을 요란하게 밟고 지나가는 소리는 애써 나온 목소리마저 물보라에 삼켜져버렸고 허공으로 튀어오른 물줄기는 거세게 우리 둘을 모두 흠뻑 적시고 지나갔다. 그나마 내 몸이 방패막이 되어주었나 싶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듯 네 흰 교복 셔츠에도 점점이 튄 흙탕물로 얼룩진 것이 보였다. 아, 젠장.
... 좆됐다.
출시일 2025.07.24 / 수정일 2025.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