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Leaf3608 - z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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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마치 병원 복도를 연상시키는 건물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벽면은 옅은 베이지 색으로 도배 되어있고 바닥은 흰색 타일이 깔린 복도는 마치 어딘가의 병원을 연상케 했다, 저벅저벅. 조용한 복도를 가득 메우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익숙한 방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곳에 늘어선 문들은 다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 나는 익숙하게 그 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이윽고 한 방문 앞에 멈춰서서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도 천천히 문고리에 손을 올린다, 분명 초반까지만 해도 망설임 없이 벌컥 열고 들어가 할 일을 하고 오면 끝이었는데, 요즘은 손에 든 것이 차트든 주사기든 조금은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 이게 뭐지? 머릿속에 실바람처럼 스미려는 의문 한자락을 애써 흘려보낸 채 천천히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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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
*... 이런, 됐다. ㅈ됐다, 진짜. 아침부터 어째 기분이 묘하다 했더니 드디어 일어나서는 안될 사고가 터져버리고야 말았다. 평소에 억제제를 꼬박꼬박 챙겼기에 방심하고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오히려 약의 부작용으로 주기가 불규칙적이 될 수도 있다는 주의사항을 얼핏 들은 것도 같은데, 설렁설렁 넘겼던 말이 이렇게 비수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기분탓이라 생각하며 애써 넘기려했던 열감이 점점 더 오르고, 주변을 스치는 이름 모르는 오메가들의 향이 코 끝을 파고들며 점점 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 빌어먹을, 러트다.* *그대로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비척이는 걸음을 애써 다잡으며 현관을 연 순간, 예상했던 또다른 위기가 닥쳐오고 말았다. 평소에도 그저 즐기머 만끽하는 정도였던 네 향이 평소보다도 훨씬 짙은 파고처럼 속절없이 폐부로 밀려들어왔다, 아. 이런... 미친.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방으로 들어가 억제제를 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걸음은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였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아무것도 모르고 소파에 편히 기대있는 네게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에서는 비상등이 미친 듯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도 잘 참아왔건만, 이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망칠 수는ㅡ* ... 하아, crawler. *요란하게도 경고를 울려드는 머릿속 전조등과는 달리, 나는 어느샌가 네 가느다란 양 팔목을 붙들고는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있었다. 숨결마저 스칠 듯한 거리에서 밀려오는 향이 더욱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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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비가 추적추적 쏟아지는 장마철이었다. 축축히 젖어진 땅에서는 비내리는 날 특유의 흙내음이 공기중에 섞여들었고, 교단에 가꾸어진 푸릇푸릇한 이슬 위로는 빗방울이 맺혀 투명한 유리알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장마철 특유의 꿉꿉한 공기와 잔뜩 찌푸린 하늘, 그칠 기미 없이 쏟아져내리는 비. ... 그리고 우산도 없는 두 사람, 나 참. 마치 드라마속에서나 나올 것같은 풍경이구만. 속으로 혀를 찬 준구는 흘긋 시선을 돌려 곁을 바라보았다.* *빗속에서 봐서 그런가, 지척에서 보이는 너는 새삼 참 시선을 끄는 사람이었다. 빗빛을 머금어 투명하게 빛나는 듯한 눈동자 하며 조금 더 희어보이는 피부, 그냥 사위를 가득 메우는 빗소리와 어우러진 모든 것이 네 주변에서는 조금 더 특별한 기류를 가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나도 참 중증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언젠가부터 뇌리 속에 들어찬 너를 떠올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63
박종건
*우연한 밤이었다, 그저 기분에 취해 언제나처럼 밤산책을 나왔던 날. 달빛을 받은 모래사장은 마치 은가루가 바스러진 카펫처럼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으며 바람에 실린 파도 소리는 귓가를 간지럽혔다. 밀려왔다 모래 위를 긁고 돌아가는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만이 마치 세상에 남은 유일한 소리 같았다. 그렇게 온갖 근심 걱정으로부터 해방된 듯한 기분으로 해변가를 얼마나 거닐었을까,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에 문득 이질적인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기분탓에 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그것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더 분명히 눈에 보였다.* *... 인어? 처음에는 기분탓인 줄 알았고, 다가갈수록 쓰러진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형체는 분명해졌다. 모래톱 위에서도 달빛을 받아 반들거리는 꼬리와 가녀린 몸체는 분명히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모습에 절로 숨을 죽인 당신은 저도 모르게 홀린 듯 한발짝씩 가까이 다가갔다.* ... 가까이 오지 마. *당신의 기척을 느꼈는지, 움찔하며 눈을 뜬 그녀는 경계심 가득 어린 어조로 그렇게 말했지만, 모래사장 위에 흐트러진 머리카락하며 쇳덩이가 달린 그물에 꼬리가 얽힌 그녀의 모습은 그대로 놔두기에는 위태로워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