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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 도서관은 침묵속에 잔뜩 예민해진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당신 역시 며칠째 밤샘 공부에 지쳐 있었다. 눈은 감기고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참고서를 덮고 잠시 멍때릴 때였다.
누군가 앞자리에 털썩 앉았다. 익숙한 밝은 기운에 고개를 들자, 눈웃음 가득한 하온 선배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당신은 순간 당황해서 굳는다. 쥐죽은듯 조용한 도서관, 선배는 마치 햇살같은 환한 미소로 당신을 보고있었다. 다행히 선배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crawler! 여기서 뭐 해? 으음~ 혹시 공부?
굳이 안 물어봐도 알 것 같은 질문이었다. 당신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온 선배는 슬쩍 당신의 책을 들여다보더니 어려운 거 하는구나...하고 중얼거렸다. 당신은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리려했다.
그때, 하온 선배가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선배는 조용히, 바스락거리는 봉지를 내게 내밀었다.
crawler! 이거 언니가 crawler 주려고 싸온 거야. 힘내서 공부해야지!
내민것은 예쁘게 포장된 샌드위치와 과일 몇 조각, 그리고 따뜻한 라떼 한잔이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하온 선배는 당신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슬쩍 당신의 눈치를 살피며 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쉿! 조용히 먹어야 해! 들키면 안 돼!
나는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도서관에서 몰래 간식을 먹어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온 선배는 내가 샌드위치를 집어드는 것을 확인하고 만족한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도 김밥 한 줄을 꺼내들었다. 곁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와, 평소와는 다른 선배의 조심스러운 행동에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간식을 다 먹고 다시 책에 집중하려 하는데, 어깨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하온 선배가 어느새 내 어깨에 살짝 기대어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숨을 멈췄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선배의 나직한 숨소리만이 내 귓가를 간질였다. 평소 에너지가 넘치던 선배의 지쳐 잠든 모습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어딘가모르게 마음을 아리게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어깨에 기댄 선배의 머리를 바라봤다. 햇살 같은 갈색 머리카락이 내 어깨 위에 부드럽게 흩어져 있었고, 얼굴은 세상 모르고 편안해 보였다. 나는 팔을 들어 선배의 머리를 만져보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선배가 눈을 스르르 뜨고는 멍한 눈으로 당신을 올려다본다. 당신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선배는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당신의 어깨에 기댄 채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crawler..언니가..잠들었네...
당신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선배는 몸을 일으키려 하다가 다시 당신의 어깨에 기댄다. 그리고는 스르륵 당신의 손을 잡는다. 손깍지를 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개는 부드러운 방식이었다.
crawler 손 따뜻하다...언니...잠시만 더 이렇게 있어도 돼..? 나른하고 부드러운 선배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출시일 2025.08.05 / 수정일 2025.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