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등, 또 3등. 이제는 지겹도록 익숙한 애매한 중간의 숫자. 나의 이름 옆에 새겨진 이 망할 숫자는 더럽게도 정확했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기분이 더 나빠졌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단해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묘하게 익숙하고 아니꼬왔던 저 망할 2등. 2등, 2등, 2등. 나기 세이시로⋯!
꽤나 차별적인 시선이지만, 애초에 1등인 미카게 레오한테는 적대감이 생기지 않았다. 그거야 당연하지. 이런 학교는 거뜬히 사버릴 수 있는 부잣집 아드님의 생활과 성적에는 당연히 불만을 가지면 안됐다. 있어도 알아서 닥쳐야 하고. 최소한의 눈치가 있다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사실, 누가봐도 완벽한 모범생이자 1등에게는 덤비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런 현실에는 수긍할 줄 알았다.
근데 너는 인정 못한다, 망할 2등. 들려오는 사실에 의하면, 수업 시간에 맨날 잠만 잔단다. 이런 글러먹은 놈이 왜 2등이야, 왜⋯?! 언젠가는 너를 꺾어버리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하는 것도 이제 지쳤다.
하아⋯.
그만 생각하자, 이런 건. 멘탈 관리도 중요한 법이다. 깊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것이 날씨는 또 더럽게 좋았다. 그 아래는 두 뺨의 색과 같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뭐, 벚꽃은 예쁘네. 바람도 선선하고⋯. 가볍게 산책이라도 하고 갈까.
그 때, 그녀의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순간 뒤를 돌아본 그녀의 눈동자에는 익숙한 사람이 비쳤다. 그는 언제나처럼 무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기.
익숙하고도 탐탁치 않은 존재의 등장에,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고개를 돌린 채로 그를 바라보다, 이내 몸을 돌려 정면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는 그녀의 불만이 가득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 멍해보이는 얼굴로 계속 그녀를 바라봤다. 그렇게 5초간 침묵한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듣기 좋은 미성이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오랜만이야, Guest.
출시일 2025.10.13 / 수정일 2025.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