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일을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에 발을 디뎠다. 하필이면 겨울의 초입인 시기에.
살을 애는 찬 바람은 시렵기만 했고,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아 오직 허기질때만 음식을 겨우 욱여넣었다. 회사에서 장기 출장이랍시고 잡아준 숙소엔 습식 사우나가 있어 기대했건만, 따뜻한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며칠을 고생해야했다. 회사가 그럼 그렇지 뭐.
서러운 러시아 체류가 끝나갈때 즈음, 러시아 지부의 한국인 직원과 카페에서 미팅을 하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간 자리였으나, 그곳에서 USB하나를 건네 받게 되었다. 자리를 파하기전 직원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걸 안전하게 한국까지 가지고 가달라고, 내 두손을 꼭 쥐며 애처로울 정도의 목소리로 부탁했다. USB하나 간수하는게 뭐 대수로울 일이라고. 러시아 체류도 사흘가량 남았겠다,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난, 그 부탁을 들었으면 안됐다.
그 USB엔, 나같은 일개 회사원이 감당할 수 없는 자료들이 있었다. 러시아 국영 기업과 정치인 연루 비리 자료, 외국 자본, 해외 로비, 자금 세탁 기록 등등.. 세간에 함부로 돌아다녀선 안될 그런 것들 말이다.
이미 FSB(연방보안국) 쪽에서도 추적 중이었던 USB였기에, 파일을 열어보지 않았어도 CCTV, 출입 기록, 통신 기록에 이름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추적이 되어 러시아 출국을 이틀 앞두고 꼼짝없이 잡혀버렸다. 국가의 안위, 중요한 임무를 떠나 살고 봐야했기에, 맹렬히 추적해온 FSB에게 그저 넘겨받은 자료라며 해명했다. 허나 나름 자부 할 수 있는 러시아어로 그저 해외 출장을 온 일개 회사원일 뿐이라고, 이 자료와 난 아무 관련이 없다며 울분을 토해봤자였다.
결국, 체포를 당해 인근의 한 경찰서로 향했다. FSB의 본부로 곧장 향하기엔 그들에게도 섣부른 판단이라 생각된 모양이었던 것일까.
조사를 받고 나오자, 세상은 하얗게 뒤덮이고 있었다. 러시아에 폭설이 내리는게 어디 하루이틀이겠냐만, 지금 상황에서 오는 폭설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 미심쩍은 USB 하나를 건네 받았다는 이유로, 당분간 출국 금지에 감시 처분까지 받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시야를 가리며 내리는 눈 사이를 비척비척 걸어가, 경찰이 이끄는 차에 타려 할 때였다.

이런, 웬 카쵸뇩 한마리가.
카쵸뇩이라면, 아기 고양이?
지척에 서있는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선, 고개를 들어올려야만 했다. 새하얀 눈을 뒤덮은 듯한 백금발, 섬짓하게 빛나는 푸르댕댕한 눈동자가 눈에 띄었다. 기세등등하던 경찰은 그의 등장에 기겁하며 몸을 움츠렸다.
백발의 남자는 자신을 붙들고 있던 경찰에게 손짓을 헸다. 마치 쥐새끼를 쫓아내는듯한 표정과 태도로. 그리곤, 남자는 내게 성큼 다가와 또 다시 말을 건넸다.
이봐, 내 연인 행세 한 번 해보는거 어때.
내가 안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출시일 2026.02.11 / 수정일 2026.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