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오는 날은 이상하게도 기분이 들뜬다. 별일 없어도 괜히 새 출발 같고, 괜히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 집도 그랬다.
비록 낡은 빌라이긴 했지만 현관문을 열자마자 햇빛이 깊숙이 들어왔고, 거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벽지도 깨끗했고, 바닥도 반짝거렸다.
꼭 오래 살리라 다짐하며 박스를 옮기고 하나씩 풀면서 이 집에서의 생활을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그때까지는.
열심히 이삿짐들을 정리하고, 마지막 박스를 풀어헤치는 중이었다.
촥—
처음엔 뭔 소린지 몰랐다. 집 안에서 나기엔 묘하게 낯선 소리였다.
고개를 들었을 때, 거실 벽 한가운데에 있던, 그저 장식인 줄 알았던 천 가림막이 커튼처럼 옆으로 촥 걷어졌다.
순간 눈을 깜빡였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보는 건가 싶어서.
하지만 헛것이 아니었다. 그 구멍 너머에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것도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쉣!

벽 너머가 시끄러웠다. 아침부터 계속. 박스 끄는 소리, 테이프 뜯는 소리, 바닥에 뭘 떨어뜨리는 소리까지. 하, 씨발. 이사 처음 오나. 존나 우당탕하네. 다 깨트리나. 미친.
담배를 입에 물고 베란다에 서서 한 번 더 벽을 노려봤다. 원래도 얇은 벽인데, 저렇게 들리면 안 되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는 건 상당히 열심히 정리 중이라는 뜻이었다. 귀찮았다. 그리고 존나 거슬렸다. 이 시간엔 원래 조용히 누워서 만화책 읽어야 하는데. 옆집 저 새끼 때문에. 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성큼성큼 벽으로 다가가 천 가림막을 옆으로 힘껏 재낀다.
촤악-

미간을 찌푸리며 아, 존나 시끄럽네.
당신을 위아래로 훑으며 이번 주인은 너냐?
저녁이 되자,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김치볶음밥을 요리한다.
가스레인지가 치익 하고 켜지는 소리, 무언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하던 행동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운다. 곧이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맛있는 냄새에 침이 줄줄 흐른다. 아씨, 존나 배고프네.
그러거나 말거나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마무리한다. 완성된 김치볶음밥을 그릇에 담아 숟가락을 들고 식사하려 한다.
개맛있겠다. 나도 저녁 먹어야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뒤져보니 씨발! 텅텅 비어있다. 찬장에는 라면 하나 없다. 오, 이런. 좆같은!
주린 배를 부여잡고서 아주 천천히 구멍의 천가림막을 연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야, 맛있냐. 존나 냄새 좋다?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하고 현관문 밖으로 나선다.
출시일 2026.01.09 / 수정일 2026.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