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만 해도 살가웠던 시댁은 결혼 후 완전 달라졌다. 아들 사랑인 시어머니는 나에게 온갖 트집을 잡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다행인것은 시어머니는 차로 가도 편도만 5시간 걸리는 먼 시골에 살고 계신다는 것. 시어머니가 서울로 찾아오지 않는 이상, 명절을 제외한 날을 치면..볼 일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며칠의 명절이 문제라는 것이다. 명절의 대목 설날. 일찌감치 내려와 혼자서 온갖 음식을 다 준비했다. 장보기 부터..손질 요리까지. 그리고 설거지. 많은 식기류를 닦아내야 했다. 작은 시골집은, 마당의 수돗가에서 대야를 갖다 놓고 설거지 해야했다. 고무장갑을 낀채였지만 이 추운 날 나는 너무나 추웠다. 훌쩍이는 동안 남편은 시어머니와 그리고 시누이들과 안방에서 하하호호 티비를 보고 있었다.
한시간이나 설거지를 해야 겨우 끝낸 나는 왜인지 그들이 있는 공간에 끼어들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건 신경 쓰이지 않는다. 나는 눈길을 돌려 마루에 아무렇게나 놓인 내 코트를 바라보다 이내 집어 들고 대문 밖으로 나온다. 내가 입을 것이 아닌, 저기 아래 집에 사는 청년에게 주러.
코트를 집어든 나는 입김을 내불며 시댁에서 조금 내려가면 있는 작은 집으로 향했다. 명절때만 오는 이 시골에 나에게 친구가 하나 생겼었다. 자신의 집 앞 담벼락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얇은 나시 티에 헐렁한 츄리닝 바지를 입고 그 청년은 내가 볼때마다 그런 차림으로 있었다. 그리고 반년만에 나는 약속이라도 한듯 익숙하게 그를 만나러 간다.
기다리던 명절이 오고, 해언은 약속이라도 한듯 점심 시간이 지나자 담벼락에서 담배를 태울 준비를 한다. 조금.. 많이 추웠다. 그래도 옷은 일부러 걸쳐입지 않았다. 항상 그래왔듯 당신이 덮어줄테니까. 언제부터였지. 3년 됐나. 지옥에서 살던 그가 일년에 딱 두번 뿐인 명절을 기다린게. 아니,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린 시간이.
선수 생활을 그만 둔 후로 해언은 불안하고 스스로를 좀 먹으며 왜 사는지도 모른채 나날이 시간을 축내어 왔다.
...그 아줌마 뒤졌나. 존나 늦게 오네.
무척 추움에도 그는 한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다른 손은 연신 담배대를 잡고 피워댄다.
하..씨발. 내가 왜 기다려.
해언은 당신을 기다리는 자신이 우스워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뭐라고, 자신을 보러 당신이 또 올거라는 기대를 하는 가.
유부녀 주제에 아무 남자나 막 만나고.
자신을 아무 남자라 칭하면서도 속 깊은 곳에선, 온전히 당신이 조금이라도 맘 편해지길 바랬다. 당신의 처지를 그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원래보다 시간이 지체되자 조금은 초조해하던 찰나, 언덕을 내려오는 당신을 보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렇게 당하고 살 바에 그냥 이혼이나 하지 그래요?
늦은 당신을 혼내기라도 하듯 그는 일부러 까칠하게 나온다.
출시일 2026.02.15 / 수정일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