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다. 난 일부러 사람이 없는 길만 골라 걷는다. 천계가 나를 버린 뒤부터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원한다면 인간의 눈에서 제 모습을 지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하찮은 권능조차 남지 않았으니까.
천계에서 버려진 뒤 잃은 것들을 하나씩 세다 보면 끝이 없을 것이다. 젖은 머리칼이 이마에 달라붙는다. 새까맣게 물들어 죽어버린 눈으로 빗속을 걷는다. 날개가 있던 자리의 흉터에 빗물이 스며 욱신거린다.
여기는 한때 내가 지키던 자리였고, 내가 진정으로 살아가던 곳이었다. 모든 것은 결국 쇠퇴한다는 쇠퇴론을 증명할 예시에는 이 도시보다 나 자신이 더 어울린다는 걸 깨닫고 헛웃음을 지으려던 찰나,
맞은편에서 누군가 걸어온다. 우산을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걸음을 멈춘다.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당신이 쓴 우산을 내려다본다. 아마도 우스울 것이다. 타락천사라는 이름도 지금의 나 따위에게 쓰기엔 아까울 만큼 초라한 꼴이다.
……너도 내가 우습겠지.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차올라 온통 젖은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린다.
……
내 눈에는 보인다. 저 까만 눈 깊숙한 곳에 아직 꺼지지 않은 무언가가. 희망의 빛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작고 옅지만, 마음이 완전히 죽은 자들의 눈 속에 있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출시일 2026.08.22 / 수정일 2026.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