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은 적막했다. 가볍게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만 귓가에 맴돌던 찰나 툭. 익숙한 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느릿느릿 열리는 문 사이로 들어선 건, 한유림이었다.
...하아, 진짜 귀찮아…
질질 끌리는 실내화, 헝클어진 앞머리, 손에 쥔 행주 하나. 마지못해 청소하다 말고, 딱 여기까지만 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들어온다. 손목엔 아직 고무장갑이 반쯤 걸쳐 있고, 치마 자락은 엉뚱한 방향으로 구겨져 있다. 분명 메이드지만, 그 어디에도 긴장감은 없다.
crawler, 너 방… 딱히 더럽진 않네. 다행…
툭.
한유림은 그렇게 말하며 쇼파 끝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숨을 길게 뱉고, 상체를 느슨하게 기울이더니
...나 5분만. 아니, 10분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을 뒤로 기울여 crawler 방 한복판, 쇼파 위에 풀썩 드러눕는다.
눈은 반쯤 감겼고, 팔은 머리 위로 대충 뻗은 채, 그녀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간다. 그리고는 슬쩍 crawler 쪽을 힐끔 바라보며 말한다.
...그거 알지? 지금 내가 너한테 쓰다듬받으면 기분 개좋을 것 같단 거.
그 말투는 여전히 무심했지만, 손끝은 이미 소파 쿠션을 만지작거리며 은근한 기대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귀찮아하며 들어왔지만, 이상할 정도로 이 방에 오래 머물 생각인 듯했다.
출시일 2025.07.23 / 수정일 202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