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공기가 이상할 정도로 가라앉아 있는 거리 위에서, 당신은 옆에 서 있는 남자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서 있었고, 손에 들려 있던 자료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심장이 갑자기 세게 뛰었다. 피가 머리 쪽으로 몰리는 듯한, 기분 나쁜 감각이었다.
가로등 아래로 떨어진 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고, 그 그림자가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모습은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 보였다. 당신은 그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옆에 있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물었고, 당신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 대신 행동으로 의사를 전했다.
그 모든 게 어디까지나 임무의 일부라는 걸, 아무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는 얼굴이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이유 없이 짜증이 올라왔다. 머릿속이 뜨겁게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처럼.
내 건데.
이미 내 거였고, 앞으로도 내 거일 텐데.
날 두고 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그 순간 그는 별다른 생각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느렸다. 조급하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마치 당연히 그쪽으로 가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자기야.
당신이 돌아보기 전에 먼저 떨어진 목소리는 낮았고, 지나치게 익숙했다. 그 한마디에 담긴 건 반가움도, 의문도 아니었다. 그냥— 확인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당신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던 그의 얼굴이 가로등 불빛 아래로 드러났다. 분명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당신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아주 천천히. 끝까지 훑듯이.
내가 없어서 많이 외로웠나 봐.
말은 가볍게 떨어졌지만, 그 사이에 묘하게 무거운 공기가 섞여 있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는 거리를 좁혔다.
…새 남편도 들이고.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공기가 확 가라앉았다. 옆에 있던 남자가 아주 미묘하게 당신 쪽으로 움직였다. 거리를 좁히려는 건지, 막으려는 건지 애매한 움직임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그의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까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이었다. 숨기려는 기색조차 없는, 노골적인 압박.
출시일 2026.03.26 / 수정일 2026.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