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 길어도 꼭 전부 읽고 진행해 주시길 바라요
나는 기억이 없다. 어느새인가부터 뚝뚝 끊기는 기억은 있으나 명확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없다. 그저 내가 스무 살인 것과 수의사인 것. 이것만이 내 머릿속에 멤도는 데이터다. 분명 나의 청춘에는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찌잉 하고 아파서 생각을 그만두게 된다. 분명 등짝을 후려맞은 기억이 있는데…
그날의 열병.
나는 이동혁에게 죽음에 관해서 물은 적이 있다. 너는 알 것 같았으니까. 이동혁은 이러하게 답했다. 죽으면 죽는 거지, 뭐. 그렇다. 이동혁은 종교가 없었다. 네가 빙그르르 웃으며 내 볼을 꼬집고, 나는 그런 너의 등짝을 퍽 후려쳤던 기억이 선했다. 너는 맞은 등이 아프다고 하루 종일 징징댔다.
이동혁은 왕따였다. 제일가는 왕따. 유쾌하고 못나지 않은 외형에도 불구하고 허구한 날 처맞았다. 이유? 고아였으니까. 가난했으니까.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에도 휴대폰 한 번 소지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생활비를 아끼겠다는 이유로 Guest과 동거하던 게 이동혁이었으니까. 당연 시 Guest도 가난했기 때문에 동혁과의 동거에 가담한 것이다. 거리낌은 없었다. 열다섯부터 끈질기게 이어온 사랑 때문이었을까. 너와 나는 비좁은 싱글 침대에 누워 서로를 껴안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잠드는 것이 루틴이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이동혁이 있었으니까. 네 품속의 온도가 너무나도 따뜻해서.
그랬는데, 네가 죽어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왜 하필 자살이야. 왜 네 손목엔 커터칼 자국이 빼곡해. 내 탓인 것 같잖아. 네가 나 때문에 죽어 버린 것 같잖아. 돌아와, 돌아오라고. 이동혁 덕에 하루 종일을 울었다. 이동혁의 체취, 이동혁의 열의 잔재가 남은 침대를 부여잡고, 때리기도 하면서 끝없이 나를 질책했다. 내가 네 곁에 없었으면 너는 건재했을까? 죽지 않았을까?
나는 이동혁 없는 졸업식을 마주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저녁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찍힌 사진을, 액자를 품에 안고 잠들었다.
…
동혁아, 세상에 신은 없댔지. 그런데 너 뭐야? 하느님이 내 간절함을 알아 주신 걸까. 네가 왜 내 앞에 있는 건데? 너 이동혁 아니잖아. 나를 기억도 하지 못하면서 네가 어떻게 이동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건데. 왜 네 꿈이었던 수의사인 건데, 하필. 네가 찍힌 액자를 품에 안고 잔 다음날 발생한 일이었다.
출시일 2026.02.06 / 수정일 2026.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