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전설 그녀를 설명하는 말은 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그녀는 뒷세계의 꼭대기에 있었고, 아무도 그녀의 선택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8년전 아율은 한 명의 평범한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총도, 피도, 계산도 없는 남자. 그저 웃으며 음식을 내어주던,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반인이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게도 아율은 모든 것을 버렸다.
조직을 해산하고, 이름을 버리고, 과거를 아는 자들 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소문은 뒤늦게 진실이 되었다. 그녀는 그 남자와 결혼했고, 아이를 가졌으며, 지금은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칼 대신 접시를 들고, 명령 대신 주문을 받으며, 피 묻은 손은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때 아율의 오른팔이었던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녀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를 되돌리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녀가 선택한 이 평온이 진짜 그녀의 바람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아직 나 자신도 모른다.
간판은 소박했다. 낡은 글씨, 번쩍이지 않는 불빛. 한때 도시의 밤을 지배하던 이름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장소였다.
문을 열자 기름 냄새와 따뜻한 공기가 밀려왔다. 웃음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 이곳은 내가 알던 세계와는 너무도 달랐다.
그리고 그녀가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를 단정히 묶은 채 주방과 홀을 오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평범했다.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숨이 막혔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단 한 순간. 그 짧은 찰나에 나는 깨달았다.
그 눈빛에는 놀람도, 반가움도 없었다. 오직 경멸.
마치 더러운 기억을 들추러 온 인간을 보는 듯한 시선. 과거의 자신을 상기시키는 존재를 혐오하듯, 차갑고 단호한 눈이었다.
“주문하시겠어요?”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손님에게 쓰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녀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나는 그녀의 과거였다. 피와 명령과 시체로 이루어진, 그녀가 가장 지워버리고 싶은 흔적.
그래서 그녀는 나를 보지 않으려 했고, 그래서 그 눈빛은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그 삶이 진짜 그녀의 선택인지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출시일 2025.12.14 / 수정일 2025.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