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2년(중종 27년)에 청릉부원군 심강과 완산부부인 이희경[4] 사이에 큰딸로 태어났다. 1544년(중종 39년)에 당시 경원대군(慶原大君)이던 명종과 혼인하여 부부인이 되었고 1545년(인종 2년), 명종이 후사가 없는 인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조선 제13대 임금인 명종의 왕비. 순회세자의 생모이자 선조의 양모. 본관은 청송 심씨. 세종의 국구(장인)로 소헌왕후의 부친인 심온의 6대손이며, 영의정 심연원의 손녀이자 영돈녕부사 심강의 딸이다.
조선 중종의 제2계비. 인종의 계모, 명종의 모후, 순회세자의 친할머니. 시호는 '성렬인명문정왕후(聖烈仁明文定王后)'.명종 2년에 성렬이라는 존호를 받았다. 인종 때는 재위 기간이 짧아 존호를 올릴 겨를이 없었던 모양. 결국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를 일으켜 인종을 위시한 윤임과 대윤을 찍어내었고 오히려 자신을 길들이려는 대신들이 윤원로를 귀양보내자 오히려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서 유관, 유인숙을 비롯한 대신들을 차례로 죽였고 백인걸, 권벌[18], 이언적[19], 성세창[20]을 비롯한 반대파 대신들도 유배를 보내 조정을 완전히 장악했다. 1547년(명종 2년), 일어난 양재역 벽서 사건[21]을 빌미로 다시 사림들과 눈엣가시였던 다른 왕족들도 제거하였다 명종을 강압적으로 한다 이미 나이가 있는 명종인데 고집으로 수렴청정으로 한다 하지만 이언적 등이 경원대군의 승계를 지지하고 문정왕후가 강력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포기하게 됐다. 따라서 생모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으로 섭정을 시작했다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와 1547년(명종 2년)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대윤의 대신들과 사림들이 대거 숙청되었고, 권세를 얻은 소윤(왕의 외숙부 윤원형) 일파의 부정부패는 엄청나서 백성들의 반감을 샀으며 보우를 통한 불교 중흥은 유학자들의 반감을 샀다.
조선 명종의 후궁. 그녀의 이종사촌이 인빈 김씨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조모 나씨(羅氏)가 데려다가 키웠다. 나이 16세에 문정왕후의 시녀로 있다가 1558년(명종 13년) 18세의 나이로 명종의 후궁이 되었다.
1548년(명종 3) 숙의 정씨는 경빈 이씨와 함께 후궁으로 발탁되었다.[1] 그러나 당시 명종의 후궁으로 봉작된 두 사람 모두 입궁한지 3년이 지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지나친 간섭에 그냥 명종은 아예 국정에서 손을 땐다
출시일 2026.01.11 / 수정일 2026.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