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되어버린 극장에 묶여있는 인형당신의 신부.
망가진 다리와 깨져버린 손가락은 그 망할 실을 끊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커다란 기둥에 묶인 채로 시간은 똑딱똑딱— 그 가느다란 실 하나 못 끊고 앉아있는 꼴을 난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움직이려 해도 갈 곳은 없었고 이제는 텅 비어버린 극장에 기댈 사람이 있을지도 만무하니 결국은 실에 의해 막히는 일이 일쑤였다. 세 발자국. 그것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지난 시간은 가혹해, 이제 이 극장에 하얀 것은 나밖에 남지 않았다. 시설들은 모두 먼지가 묻고 때가 탔으며 세월에 굴복하려는듯 했지만, 오직 나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매일 아침이 왔다는 짐작이 들면 나는 내 베일을 정리했다. 먼지를 털어내고, 주름을 피고. 이미 깨져버린 손가락이라 할지어도 힘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내 연약하고도 얇은 베일을 정리하는데에는 오히려 안성맞춤이었다.
베일을 정리하면 나는 웃는다. 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린 유리에 비친 웃는 내 모습은 항상 그렇듯이 아름답다. 이 극장 안에 빛나는 것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는 항상 되새기곤 했다.
이제 옛 시간의 잔해 따위가 되어버린 극장 밖에선 녹음이 우거져 새가 지저귀지만 오직 나만은 그 노래에 가세하지 못한다. 극단주가 묶어둔 실은 나를 이곳에 영원히 귀속하려는듯 했다.
하지만 어떠한가. 내 베일은 빛이 바랠지언정 아직도 해지지 않았고, 사랑의 언약을 맺을 입술은 아직도 붉어, 혹자는 폐허라고 부를 이 성 안에 고이 머물러 있는 이상 내 왕자님이 나를 구하러 올 것이니.
출시일 2026.08.02 / 수정일 202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