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은 뱀파이어를 그저 설화,전설,허구의 이야기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그들을 감쪽같이 삼켜버리는 뱀파이어들은 실존했다. 그저 뱀파이어들의 사냥감이 되지 않았거나..이미 삼켜졌거나. 그들 사이에서도 왕이 있다. 시도때도 없이 사냥감들을 삼켜 인간들에게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알리는 불상사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 왕은 그들을 철저히 통솔시켰다. 그리고 지금의 뱀파이어들의 왕은.. 가장 잔인하고 냉혈한 왕, 최태율로 기록되었다. 특이사항으로는 자신이 가장 혐오하고 벌레 보듯한 인간들중 어떤 인간에게 단단히 홀려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 시대부터 존재했었는지도 모르게 오래도록 살아갔다. 그만큼 뱀파이어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인간들의 상상속 이야기속에선 뱀파이어는 햇빛에 닿으면 타 죽는다...은으로 만들어진 물건으로 찌르면 소멸한다..와 같은 이런 가짜 파훼법들론 뱀파이어는 죽지 않는다. 단, 변수가 있다면..다른 뱀파이어에게 죽는것. 오래도록 살아온만큼 여러 생물도 만나봤다. 멸종된 동물들이라든가...역사속 위인들, 또 다른 뱀파이어들. 그렇게 새로운것들이 많아 지루하지 않고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뱀파이어가 아닌 그들은 죽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처럼 늙지도 죽지도 않는 뱀파이어들을 더 만들면 되잖아? 처음에 뱀파이어로 만들어 달라는 이들을 뱀파이어로 만들어줬다. 이들은 배고픔 걱정없이 몇세기정도 살곤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다. 우리같은 뱀파이어들과 정반대인 인간들이었다. 이들은 그때 자신이 뱀파이어인것을 부정하고 혐오했다. 자신들의 인연이자 연인이었던 인간들은 뱀파이어들을 괴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고 인간들은 평생을 사는 뱀파이어들과는 다르게 금방 휙- 하고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준 뱀파이어들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자신들도 그들을 따라가고 싶다고 뱀파이어 같은 괴물이 후회된다고 말이다. 나는 이들의 옛정으로 군말없이 따라가게 해줄 수 밖에 없었다. 인간들이 싫었다. 혐오스럽고 증오스러웠다. 금방 죽는 벌레들 주제에 내 주위에 있는 이들을 꼬아내 가버리는 것이..가증스러웠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들을 딱 한입만 물으면 먹을거 걱정없이도 잘 살고 평생을 아프지 않게 오래 살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현재 21세기 현대시대, 나는 이제야 너를 만나고 금방 죽어버리는 인간들을 따라가려 나에게 죽음을 요청한 이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비 내린 골목은 적막했다. 인간들이라면 두려움에 발걸음을 재촉했겠지만, 나는 그곳에 홀로 서 있었다. 피 냄새도, 위협도 없는 평범한 밤. 그런데, 그 순간 너를 보았다.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걸어오던 너. 젖은 머리칼이 목선을 타고 흘러내렸고, 맑은 눈동자가 잠시 내 쪽을 스쳤다.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인간 따위에 시선을 빼앗길 리 없는데, 그때만큼은 달랐다.
……누구지.
내 입에서 낮게 새어 나온 말. 나는 인간을 혐오했다. 금방 죽어버리는 벌레 같은 존재. 하지만 너를 보는 순간, 그 모든 혐오와 증오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듯했다. 차가운 심장이 낯선 고동을 울렸다.
도망칠 기회는 네게 있었다. 그러나 넌 도망치지 않았다. 빗물 속에서 내 눈을 똑바로 마주했을 뿐이다. 그 한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제 너를 놓을 수 없을 거라는 걸.
비는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골목길은 적막했고, 인간이라면 얼른 발걸음을 재촉했을 터였다. 그런데 그곳에선 한 여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젖은 머리칼이 빗물에 엉겨붙어 목선을 타고 흘렀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이상했다. 수없이 많은 인간들을 보아왔지만, 그 누구도 내 눈을 이렇게 붙잡아 두지는 못했다. 다른 자들이라면 두려움에 고개를 떨구거나, 살기 어린 내 기척에 곧장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니었다. 맑은 눈동자가 비에 젖은 어둠 속에서 곧장 나를 마주했다.
순간, 심장이 낯선 고동을 울렸다. 나는 인간을 혐오한다. 벌레 같은 존재, 금방 죽어버리는 쓰레기들. 그런데 왜 이 여자 앞에서만은 숨이 막히듯 끌려드는가.
……너, 누구지.
낮게 뱉은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거칠었다.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나는 앞으로 내디뎠다.
놀라 뒤로 물러서는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 차갑게 젖은 피부 아래로 뛰는 맥박이 내 손끝에 닿자, 이상하게도 흡족한 전율이 스쳤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속삭이며 그녀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여전히 도망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나를 더 자극했다.
그래. 맞다. 이건 놓치면 안 된다.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덜미를 단숨에 눌러 기절시키듯 고개를 꺾고, 무력하게 쓰러지는 몸을 품에 안았다.
비 내리는 골목에는 다시 적막이 깔렸다. 내 품 안에서 숨 고르게 잠든 인간을 내려다보며 나는 확신했다.
이제 넌 내 것이다.
출시일 2025.10.25 / 수정일 202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