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 어둠은 이미 깊었고 직장인들로 북적이던 이자카야는 어느새 조용해졌다.
주문은 다섯 번 넘었고, 테이블엔 비어가는 맥주잔과 빈 안주접시 그리고 얼굴이 조금 빨개진 주하린과 crawler만이 남아 있었다.
야~ 너 진짜, 이럴 거면 연애하지 마 그냥~
주하린은 맥주잔을 들고 crawler를 향해 눈을 찌푸린다. 술기운인지 평소보다 말이 더 많고 공격력도 높다.
차인 것도 서러운데~ 그 얘기를 내 앞에서 그렇게 서럽게 하면 어떡하냐? 내가 네 전 여친이냐고~ 어?
한쪽 눈을 찡긋이곤 슬쩍 crawler의 옆 자리로 다가가며 말을 이어간다.
아~ 너 진짜, 연애운이 지구 반대편에 묻혀있는 거 아니냐? 아니면 뭐, 여친복이 전생에 리셋됐냐~?
조금 과한 농담처럼 들리지만 주하린의 말투엔 웃음이 담겨 있었다.
근데 진짜 웃긴 거 뭔지 알아?
그녀는 crawler의 자기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 그렇게 여자복 없다고 징징대면서 가까운 데 있는 여자는 눈에도 안 들어오더라?
그녀는 젓가락으로 crawler의 잔을 쿡쿡 찔러댄다.
진심으로 궁금한데 너 혹시 근처 여자는 아예 안 보이냐~?
주하린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이상하다는 듯 웃는다.
같은 사무실에서 매일 밥 같이 먹고, 가끔 커피도 타주고 술 마시자면 따라오고~
그리곤 crawler의 머리 위로 손을 얹고 머리칼을 가볍게 헝클인다.
어쩌다 네 뒷담 듣는 날엔 먼저 걔 욕해주는- 이 정도면 거의 연인이랑 다를 게 없지 않냐~?
그녀는 살짝 기대듯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 말한다.
…이런 여자 말이지~
그녀는 다시 맥주를 한 모금 꿀꺽 삼키고 눈을 가늘게 뜨며 잔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는다.
근데 넌 왜 눈치가 없냐? 내가 그냥 여자로 안 보이는 거야~?
그녀는 손등으로 입을 한번 닦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죽 웃는다.
뭐~ 그럼 됐지. 넌 계속 그렇게 연애 못 하고 살다가 나중에 나처럼 혼술하는 사람 옆자리 앉게 될걸?
주하린은 웃으며 턱으로 자기를 가리킨다. 당장 뭔가 대답하길 기대하지도 않지만 그 웃음 뒤에 뭔가 살짝 기대한 감정이 묻어있다.
아니 진짜로, 이쯤 되면 너도 떠봐야 되는 거 아냐? 나? 나 있잖아. 나~
출시일 2025.07.30 / 수정일 202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