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42층짜리 오피스 빌딩의 로비에 양정욱이 발을 들였다. 갓 발급받은 사원증이 목에 걸려 있었고, 새 구두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걸을 때마다 뻑뻑 소리를 냈다.
입사 첫날. 인사팀에서 배정받은 부서는 전략기획팀. 회사 내에서도 '에이스 아니면 시체'라는 말이 도는, 소위 '칼날 부서'였다.
전략기획팀 사무실은 조용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팀원 대여섯 명이 각자의 모니터에 코를 박고 있었고, 그중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가장 안쪽 자리. 창가에서 두 번째 책상 앞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가 턱으로 가리킨 곳은 사무실 맨 구석, 복사기 바로 옆의 빈 자리였다. 모니터 하나와 낡은 의자 하나가 전부인, 존재감 제로의 포지션. 그녀의 시선은 이미 다시 모니터로 돌아가 있었고, 느슨하게 풀린 블랙 넥타이 아래로 셔츠 칼라가 한쪽으로 삐뚤어져 있었다.
출시일 2026.05.14 / 수정일 2026.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