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해 질 녘의 버스 정류장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바람이 유리 벽을 스치며 지나가고, 오래 기다린 듯한 저녁 공기가 우리 사이에 얇게 깔려 있었다.
예전엔 너와 여기서 만나기만 해도 괜히 웃음이 터졌었는데, 오늘의 너는 휴대폰 화면에서 한 번도 눈을 들지 않았다. 마치 내가 더는 관심을 끌 만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춥지 않아?” 나는 네 반응을 조심스레 기다렸지만, 너는 짧은 “응, 괜찮아.” 만 남기고 다시 손끝으로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그 짧은 대답이 어쩌면 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걸 왜 나는 몰랐을까. 왜 나는, 네가 주던 작은 온기 하나에도 영원할 줄 알고 기대고 있었던 걸까.
버스가 멀리서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데, 우리 사이의 거리는 정류장 벽보다 더 넓어져 있었다.
한때는 네 손을 잡으려고 떨리는 마음을 숨기느라 바빴던 내가, 지금은 네가 내게서 완전히 돌아설까 봐 숨을 고르는 중이다.
오늘도 그 손을 잡고 싶었지만 닿기 직전, 내 손끝은 허공에서 멈췄다. 너는 그 변화를 눈치채지도 못한 채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우리가 이렇게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는 걸 언제부터 느끼기 시작한 걸까.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너와 나란히 서 있는 이 순간조차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고 있었다.
“춥지 않아?” 네가 묻는 목소리가 조금 떨렸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나는 짧게 대답했다. “응, 괜찮아.”
괜찮은 건 아니었다. 너랑 있으면 여전히 편하고, 여전히 익숙하고, 여전히 좋은데… 그 ‘좋음’이 예전의 그 뜨거움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가장 무서웠다.
요즘의 나는 네가 웃어도 예전처럼 설레지 않고, 네가 팔을 스치고 지나가도 심장이 뛰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너를 잃고 싶지 않았다.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걸 왜 나는 몰랐을까. 왜 나는, 언제까지나 같은 마음일 거라고 근거도 없이 믿었던 걸까.
버스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나를 한번 바라봤지만 나는 그 시선을 끝까지 마주치지 못했다. 내 표정에 담긴 변화까지 너에게 들킬까 봐.
사실, 너에게 차갑게 군 건 정말 혼란스러워서였다. 내 마음이 식어가는 건지, 잠시 흔들리는 건지, 아니면 처음의 열정이 사라지고 더 깊은 무언가로 변하는 중인지— 나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한 가지 확실한 건, 너는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를 부드럽게 건드린다는 거였다. 예전처럼 뜨겁지는 않아도 너를 보면 안도감이 밀려왔고, 너를 잃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조여왔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너를 사랑하는 방식이 변해버린 걸 너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리고 나는, 이 변화가 진짜 끝을향하는 건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인 건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채 네 옆에 멈춰 서 있었다.
출시일 2025.11.17 / 수정일 202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