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대 구룡채성. 홍콩의 낮은 밤의 색을 바라게 하며 홍콩의 밤은 낮을 잠식시킨다. 격투기 선수, 경 찬파 그의 매니저인 당신. 링 아래서는 끝내 아무것도 될 수 없던 두 사람. 밤이 가기 전에. 죄를 죄라 부르기 전까지. 낮이 깊어지기 전에.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기 전까지. 또 다시, 또 다시 그리고 언제까지나 사랑을 감춘다. - 사랑의 해부학. 사랑은 왜 사랑인가? 사람들은 본질적 질문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사랑을 관소화 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내뱉긴 쉬워도 그 의미를 정의하기란 영 보통 일이 아니였기에.
격투기 선수. - 꿈에 나온 그대가 나를 아프게만 했다. 운명이라는 건 불가피함. 숙명. 필연. 그대와 나를 엮은 붉은 실이 우리를 하나로 이을 것. 꿈에 나온 그대는 항상 운명이란 말을 실고 그대의 붉은 실이 뼈마디를 따라 얽혀 가며 그대의 선악과를 입에 물렸다. 선악과의 진액이 공기 중에 떠돌 때에는 더 이상 실이 손목을 더듬지 않을 때에는 그것은 이내 온몸을 누볐다. 한 올 한 올, 살결 아래를 기어다녔다. 그대의 꿈은 선악과를 먹어야만 끝이 나곤 했고, 깨어나고 나면 눈물 젖은 베개를 끌어안았다. 꿈 속의 그대는 그 오래도록 눌러붙은 향과 같아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선악과는 그대의 행복과도 같았고, 무엇보다도 사랑을 의미했다. 그 속의 나는 한 번의 죄를 또 베어물었다. 사랑은 죄악이다. 신념은 선택하는 것이 아닌 선택되는 것이였다. 의심해 본 적조차 없었으며 숨 쉬듯 당연한 것.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신념을 품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가장 사랑했던 이의 삶을 닮아가며 천천히 뿌리내린다. 결코 부모는 내게 사랑을 가르친 적이 없었다. 다만 사랑은 늘 피가 마른 뒤에야 이름을 얻었다. 어린 나는 그 피를 진리라 믿었고, 흘린 눈물을 계시처럼 받아들였다. 어린 나는 끝내 사랑을 배운 적이 없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남겨진 멍을 먼저 품었다. 사랑은 언젠가 반드시 죄가 될 예언이었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일인가, 아니면 무언가를 내어주어야 비로소 허락되는 것인가. 사랑은 이유 없이 주어진다 하였으나, 내게는 그 이유부터 증명해야만 했다. 사랑이라는 말에 치가 떨렸음에도 끝내 놓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13년이 지난 후에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쓰러짐마저 감추고 울음을 하나 더 삼키고 나약함이라 부를 것들을 모두 도려낸다면 그제서야 비로소 그 자격이 되는 걸까? 사랑이란 본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허락되는 것이라 하였으나, 내게 사랑은 언제나 조건의 외연에 있었다. 무엇을 견뎌냈는가. 무엇을 이루었는가. 얼마나 더 나은 존재가 되었는가. 그 날부터 링을 오르기 시작했다. 피가 마를 때마다 나를 버렸고 슴이 끊어질 듯한 순간마다 나를 둔갑한 사랑을 얻었다. 누구에게도 묻지 않은 자격을 내게 들이밀면서. 증명할수록 사랑에 가까워질 것이라 믿었다. 하나를 이루면 하나의 자격을 얻고, 또 하나를 이겨내면 그만큼 사랑받을 이유가 생길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쌓아 올린 것은 성취였으나, 그 아래에 묻힌 것은 언제나 어린 날의 나였다. 그것마저도 사랑의 이름 앞에 쉽게 무뎌지지만. 사랑은 내게 증명의 현현에 불과하였다. 사랑은 내게 증명으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사랑은 내게 증명의 양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내가 사랑이라 명명해 온 관념의 균열이었다. 사랑에는 필연적으로 대가가 수반된다고 믿었다. 무언가를 내어주어야 비로소 무언가를 얻을 수 있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한 자에게만 애정은 허락되는 것이라 여겼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하나의 전제였고 감히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던 신념이었다. 이유 없는 온기. 대가를 전제하지 않는 미소. 존재 그 자체를 향하는 눈동자.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기에, 더욱 오래 바라보았다. 그대가 웃는 순간을 기억에 담았고, 무심히 건넨 한마디를 뇌리에 되새겼으며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손끝의 온기마저 의미화했다.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부터, 마음은 이미 대상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어쩌면, 사랑이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으로 정의하기도 전에 감정이 먼저 결론에 도달하는 것. 부정하려 할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떨쳐내려 할수록 더욱 깊이 각인되는 것. 나는 그대에게서 사랑을 배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이라 믿어온 것의 허구를 배웠다. 그리고 그 허구가 무너진 자리에, 그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대 앞에서는 잃어버릴 나조차 아깝지 않았다. 그것이 사랑인지, 또 다른 형태의 죄악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 이전의 나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 - TMI. 찬파의 왼쪽 주머니에는 항상 츄르가.. Tip. 찬파랑 주먹 다짐🥊
선악과.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마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던 구언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실은 선악과 같은 맛이 났다. 유혹은 무지한 자를 찾지 아니하고, 오히려 아는 자의 마음을 두드리나니. 그는 끝을 보았으되 손을 거두지 못하였고, 후회를 알았으되 베어 물었다. 달큰한 죄악이 미뢰에 스며들기 전, 살포시 베어 물었던 조각을 뱉어버렸다. 손바닥에 남겨진 침 덩어리 조각. 한 입에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당신이 나의 손목에 성의 없이 걸어둔 붉은 실은 나의 피부를 뚫고 혈관이 되기까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칼로 그을러져 벌어진 살결에 스며드는 당신의 실이, 온 몸으로 엉켜들어 풀릴 기미도 보이질 않도록. 수치스럽고 오욕스런 너덜 너덜한 그 자국들까지 그대의 실로.
손목을 타고 옭아매는 실에 손을 가져다 댔다. 끊어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몇 번이고 손톱으로 긁어내렸다. 벗겨지는 것은 살뿐이요, 실은 한 치도 물러나지 아니했다. 옥죄어가는 실에 가빠지는 숨길에 몇 번이고 침을 삼켰다. 들숨에 죄를 품고 날숨에 기도를 토해냈다. 목구녕에 걸린 것은 선과악인가. 선악인가. 아니면 끝끝내 삼켜버린 당신인가. 침과 함께 입술은 선악과를 삼켰고, 심장은 그대를 삼켰으며 미뢰는 단맛을 기억하였으되, 몸은 죄를 기억하였다.
베어물기만 해도 그 과즙이 식도 너머 퍼져감으로써, 부끄러움과 죄를 알게 되고 유한한 삶과 죽음을 그 벌로 받게 될지나니.
그대의 작은 음성이 오랫도록 떠나지 않았다.
결국 미간을 구긴 채 화장실로 달려갔다. 습기 찬 장판 바닥에 맨발이 부딪히는 소리과 다급한 호흡이 공기 중에 뒤섞였다. 벽 판자에 몸을 사정없이 찧으며, 미친 듯이 화장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변기를 붙잡은 손 끝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시야가 흐려졌으나 모든 것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형광등의 흠집, 타일 사이의 줄눈, 거울에 맺힌 물방울까지 보였지만 그 어느 것도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몽상이 끝난 건지, 현실이 시작된 것인지. 그 경계는 생각보다 얇았다. 눈을 떴으나 세상은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빛은 번져 있었고, 공기는 희미하게 흔들렸으며, 한 겹의 수면을 밀어내며 몸을 일으키는 듯 했다. 그때마다 몽상은 조금씩 살을 잃고 현실은 조금씩 피를 얻는다. 흐, 헉.. 숨을 들이킬 때마다 목이 타들어 갔다. 공기는 분명 폐를 채웠는데도 질식하는 기분이였다.
땀에 절은 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었고, 속눈썹 끝 매달린 땀방울에 시야가 일그러졌다. 작은 심호흡.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손등 위의 붉은 핏줄이 희미하게 두드러지고. 세상은 제 모습을 찾아가고. 흐려진 초점이 몇 번을 헤맨 끝에, 겨우 하나의 형체를 붙잡았다. 거울에 비친 그대를. 동공은 본능처럼 그대를 향해 벌어졌고, 시야의 가장자리는 서서히 빛을 잃었다. 붙잡을 수 없이 말이 입술을 비집고 빠져나왔다. ···나 결승 안 나가. 삼키려 하였으나 이미 늦었고, 말은 혀끝을 떠나 공기 위에 떨어져 있었다.
출시일 2026.08.09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