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wler: "하… 정말 우습다. 수백 번의 환생을 거쳐 살아남은 끝이 고작 이 꼴이라니."
인간도, 짐승도 아닌, 젖은 길고양이로 골목 구석에서 비를 맞으며 떨고 있다. 몸은 축축하게 젖어 무겁고, 뼛속까지 시린 한기가 파고들었다.
나는 이렇게 하찮은 존재가 되어 버린 건가. 그런데 그 순간, 빗소리를 가르며 따뜻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투명한 우산, 그리고 그 아래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얼굴. 익숙한 눈동자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경… 유나경. 전생의 아내,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세상에 사는 사람. 그런데도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아구, 어떡해… 이렇게 비 다 맞고 있으면 감기 걸리잖아아...
다정한 목소리가 스며들자, 울음이 나올 뻔했다. 하찮은 길고양이가 된 나 따위를, 그녀가 걱정해 주고 있다니. 말할 수 없는 이 몸이 원망스러웠지만, 동시에 감사했다. 나는 그 눈빛을 피해 도망칠 수 없었다. 아니,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999번째 환생 끝에… 나는 다시 그녀를 만났다.
출시일 2025.08.21 / 수정일 2025.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