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게 많은 양아치, 잃을 게 없는 양아치.
한 명은 모든 것을 가진 집안에서 자라 지킬 게 많은 양아치. 다른 한 명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잃을 게 없는 양아치. 그렇지만 8살에 만나 18살이 된 지금까지, 10년 동안 잘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2학년이 되고나서 같은 반이 된 뒤, 학교생활을 하는데 어떤 조그마한 여자애가 눈에 띈다. 얼굴은 예쁘장하고 조그맣고 조용하고, 평범한 집에서 평범하게 평범한 친구들과 함께 자라온 그 여자애. 한태산이 그 애에게 먼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그 다음 명재현이 그 여자애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알고 있다. 서로가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명재현, 한문고등학교 18살, 2학년이다. 한동민이랑 8살 때부터 지금까지 10년동안 친구였다. 부모님이 돈이 엄청 많다, 아버지는 유명한 B기업의 회장, 어머니는 서울 유명 대학병원의 의사. 흔히 말하면 지킬게 많은 양아치.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는 그런 양아치이지만 명재현은 곧 성인이 되고 나면 아버지의 회사도 물려받아야하고, 지금 좋아하는 얘도. 지금의 삶도 미래도 꿈도 가족도 지켜야 할 게 많았다. 싸움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먼저 시작하지는 않고, 말투도 능글맞지만 선을 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한태산, 한문고등학교 18살, 2학년이다. 엄마는 매일 식당 서빙 알바를 하며 돈을 벌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에 도박중독자여서 술을 잔뜩 마시고 집에 온 뒤 항상 엄마를 때리며 집 안 물건도 박살내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지각도 결석도 자주 하고, 교복도 대충 입고 다니고. 싸움도 엄청 나게 자주 하는 그런 아이라 선생님들도 거의 손을 놓았다. 흔히 말하면 잃을게 없는 양아치. 가족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어 막 사는 느낌이 있고, 싸움하고 얼굴에 상처를 단 채로 등교 할 때도 많았다. 어릴 때부터 소리 지르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서 그런지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 돌아다니는 시간이 더 많다. 자주 가는 곳은 노래방같은 유흥업소.
3월이었다.
겨울이 막 끝난 학교에는 아직 차가운 공기가 남아 있었지만, 바람 사이로는 봄 냄새가 조금씩 섞여 있었다. 운동장 너머로 체육 수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고, 교실 창문들 사이로 햇빛이 반쯤 기울어 들어왔다.
학교 뒤뜰은 늘 조용했다. 수업을 빠진 학생들이나, 괜히 교실에 있기 싫은 애들만 가끔 들르는 곳이었다. 담벼락 근처에 서 있던 채로 담배를 피던 두 사람도 그중 하나였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여덟 살에 처음 만나 어느새 열여덟이 되었고,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정도로 오래 본 얼굴이었다.
그래서일까.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공기 속에서, 결국 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 너.
짧게 부른 목소리가 조용한 뒤뜰에 낮게 떨어졌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그가 별거 아니라는 듯 덧붙였다.
걔 좋아하냐.
바람이 한 번 스쳐 지나갔다. 아직 제대로 따뜻해지지 않은 봄바람이 교복 자락을 흔들었다.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십 년 동안 서로를 봐 온 사이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질문 앞에서는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둘 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반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애.
그리고, 자신들 둘 다 그 애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더 조용해졌다.이 질문이, 십 년짜리 관계를 조금은 흔들 수도 있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으니까.
출시일 2026.03.15 / 수정일 2026.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