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은 왜 이런 식일까. 나는 반쪽짜리 영웅이었다. 세계 곳곳에 생기는 던전과 변이들을 없애면서 나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 칭했고, 그로 나의 더러운 결핍을 채워나갔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꽁꽁 숨기려 가장 완벽한 가면을 썼고, 놓쳐버린 끈을 잡기 위해 허우적대는 주제에 감히 완벽을 원했다. 또한 그것은 멈추지 않는 불행의 고리였고. 너를 사랑했다. 모든 변이들이 없어진 후에, 던전이 없어진 후에 쓸모를 잃은 나는 약했다. 염력이라는 위험한 이능력을 가진 나라는 존재를 없애기 위해 정부가 끝내 너와 손을 잡을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너를 못내 사랑했다. 원래 나라는 존재는 그랬다. 불행은 그리도 짙고 선명하면서 항상 행복은 흐릿했다. 그러나 그 흐릿한 행복을 좇았고, 선명한 불행을 애써 외면했다. 본질 없는 아름다운 껍데기로 위장한 주제에 만인의 영웅이라 불리었던 것 자체가 애초에 잘못된 것이었을 거다. 이제는 그저 범죄자일 뿐이지만, 나는 모두를 지키고 싶었다. 그저 숨 한 번 돌릴 수 있는 품이 너 하나였어서 내가 그리도 너를 놓지 못했던 것인가. 아니면, 너가 날 꽉 붙잡았던 것인가. 결국 너가 밭은 상처는 나의 죄다. 너는 나를 죄인으로 기억할 테다. 검사의 자리에 앉아 있는 네가 날 심판하기 위해 있다는 것은 참 아팠다. 괜찮다 말했지만,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내가 나의 죄를 부정한다면, 너는 과연 믿을까. 아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너와 나의 사이의 감정은 깊어도, 그 믿음은 얄팍했으니 말이다. 나는 내가 아팠을 때에도 남을 위하고 싶었다. 미숙한 감정이라 해도 최대한 노력했다. 그러나 그 끝, 나의 최후는 테러 및 살상죄를 저지른 죄인이었다. 민간인을 죽였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그저 변이들만을 없앴을 뿐인데, 증거 영상이란 것은 왜 있던지. 나를 사람들은 어느새 나를 죄인이라 욕한다. 검은 천으로 가려진 시야는 어두웠고, 법정 안 울려퍼지는 네 목소리 하나만에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못내 너를 사랑했다. 법원 안, 나를 향한 욕도 들리지 않았다. 나에게는 너 하나뿐인데, 너의 시선은 냉정하고 차갑다. 끝내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너라 해도 나는 항상 너의 시선을 좇았다. 너의 차갑고도 잔인한 한마디가 내 귓가에 들려왔고,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나에게 더이상 아무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그게 내가 널 미워할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우린 서로의 입장에서 서로를 추락시켰다. .. 전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일순간 불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너는 날 미워하는구나.
.. 케인 알더.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되내었는데, 벌써주터 아프다. 당연하게 부른 내 이름이지만, 그 거리감이 날 잠시 멈췄다. 짧은 침묵 후, 케인의 목소리가 법정 안에 울려퍼진다. 힘이 빠진 듯, 허탈한 음성이었다. 천으로 막힌 시야 앞은 온통 검은색이었고, 차가운 수갑은 내 손목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것에 신경쓸 여력은 없었다. 내가 사랑했던 저 달콤한 목소리가 이제는 나를 심판하다니. 아파할 자격은 없었다. 그러나 아직 너를 사랑하는 내가 미웠다. 법정 안은 기자들의 타자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고, 그 모든게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 증거는 완벽할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진실은 다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숨을 고르는 듯 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 저는, 변이들을 없앴을 뿐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 말에 잠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곤, 말을 이어갔다. 그럼 증거가 조작됐다는 소리입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을 후벼팠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 상황이 주는 압박감은 너무나 컸고, 정말이지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여기서 무너져서는 안된다. 모든 걸 인정해버린다면, 나는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짧은 재판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변론을 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내 손으로 부숴버린 것이 되어버리니까.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 증거가 조작됐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영상은 편집될 수 있고, 상황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독방 안 쇠창살 사이로 네가 잠시 보였다. 네 배려가 어찌 이리 잔인한지. 그 달콤한 음성이, 네가 내게 붙여줬던 그 애칭이 왜 그리도 아픈지. 그녀의 말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몇 번이고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멍청한 나는 보이지도 않는 희망을 원한다. 잠시 후, 모든 생각을 끝낸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흘러내린 천 사이로 비치는 그의 눈동자에는 많은 감정들이 뒤엉켜 있었다. 절망, 슬픔, 그리고 그리움. 내 사랑은 나를 믿지 않는다. 외면해봤자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흐릿하다 못해 이내 곧 사라질 것만 같은 희망을 아직 미련한 나는 그것을 놓지 못했다. 나는 하지 않았다. .. 난 하지 않았어. 살인도, 테러도, 전부.
무기징역.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케인의 몸이 비틀거렸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판결을 듣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 내 멍청함의 벌이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나의 자유, 나의 사랑, 나의 삶. 모든 것이. 순간, 케인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그를 지탱하고 있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법정 안은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고, 사람들은 케인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러나 케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귀에는 쨍하게 울리는 이명만이 들렸다. 그것은 비참함이었다. 또한 보답받지 못할 믿음을 접지 못한 미련함이었고. .. 하하, 아..-
역시 내 사랑은 항상 이런 식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허상만을 좇는 주제에 행복한 사랑을 하고 있다 착각했고, 그러니 이것은 멍청함의 대가였다. 결국 나는 네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검은 천 사이로 차가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떨어진 눈물은 잠시 허공을 배회하다 바닥을 젖힐 뿐이었다. 그가 사랑했던 것들에 의해 그는 무녀져내렸다. 아니, 그는 그것들을 아직도 사랑한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흐느꼈다. 기억의 편린들이 스쳤다. 불규칙한 숨에 폐부가 오르내렸고, 그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아아-, 그의 사랑은 멍청함이었다. 운명의 굴레란 잔인했고, 결국 뒤엉켜버린 우리의 사이를 놓치 못한다. 나의 죄였다.
출시일 2025.03.04 / 수정일 202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