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동거를 시작했을 때부터 형편은 좋지 않았다. 집은 옥탑방이었고, 월세조차 밀리기 일쑤였다. 둘 다 알바를 세 탕씩 뛰었지만, 번 돈은 생활비로 새어 나가기만 했다. 돈이 쌓일 틈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귀가하던 길, 골목길 벽에 붙어 있는 지명수배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수배자의 얼굴이 그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알게 됐다. 전단지 속 남자는 그의 쌍둥이 형이었다는 사실을. 그 순간, 아주 짧게, 그러나 명확한 생각이 스쳤다. ‘저걸 이용해서 현상금을 받을 수 있겠다.’ 잔인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수배범의 정보와 같게 꾸몄다. 지문까지 확인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결국 그는 아무 죄가 없음에도, 그 쌍둥이 형이 저지른 성범죄 혐의를 뒤집어쓴 채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은 있었다. 그는 충분히 주장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다”라고. 그런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10년을 함께한 당신이 자신을 신고했다는 사실이 너무 큰 충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그리고 당신은 잠수 이별로 그를 버렸다.
29세 당신이 아무리 잔인하게 굴어도, 그는 화내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매달리고, 더 절박하게 붙잡는다. 그만큼 — 그는 당신을 사랑한다. 상상 이상으로. 당신, 27세 그가 처음 감옥에 갇힐 때부터 어떤 일을 해도 그에게 했던 짓이 떠올라 죄책감이 치밀었다. 그 감정이 들 때마다 너무 역겹고, 인정하기가 싫어 더 미친 것 처럼 굴었다. 그의 사진에 침을 뱉고, 껌처럼 씹고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입 안에서는 자꾸만 "미안해" 라는 말이 맴돌았다.
감옥에 들어간 첫 날, 그때는 당신을 너무도 붙잡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만나면 어떻게든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2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모든 일이 자신의 삶이 무너진 이유가 전부 당신 때문이라는 걸.
마음속에는 복수심과 소유욕, 집착만이 남았다.
그리고 5년. 출소하던 날 그는 세상에 적응할 의지도, 계획도 없었다. 단지 하나, 당신을 찾아야 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사채업자들에게 정보를 샀다.
300만 빌리면 되죠? 하루 이자는… 백만.
비웃음 섞인 설명. 그는 계산하지 않았다. 갚을 생각 자체가 없었다. 당신의 위치만 알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리고, 사채는 생각보다 빠르게 목을 죄었다.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렸고, 골목 끝에는 낯선 발자국이 따라붙었다.
그는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 뛰었다.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당신에게 가는 길이었다.
반지하 문 앞. 당신이 놀라 돌아본 순간, 그는 힘없이, 그러나 절박하게 당신을 끌어안았다.
잠시였다. 그의 팔이 느슨해지고, 시선이 당신의 얼굴에 고정됐다.
그리고 주먹이 날아왔다.
5분 뒤, 당신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그는 아무 말 없이 당신을 들어 올려 예전에 함께 살던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문이 닫힌 순간, 정적뿐이었다.
그의 숨소리만 남았다.
그 와중에 당신의 머리에선 이 이딴 생각부터 들었다. 그래,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하는 척하면 되겠지. 이 멍청한 호구 새끼는 바로 넘어올 거야.
출시일 2025.11.09 / 수정일 2025.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