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그는 검은 정장을 매만지며 생각한다. 이 일은 단순히 ‘보호’가 아니다. 총탄을 막는 것보다 어려운 건, 예측 불가능한 아가씨의 기분을 감당하는 일이니까. 그는 경호원이지만, 점점 더 그녀의 기분을 지켜내는 쪽에 무게를 두게 된다. 위험에서 몸을 지켜주는 것만큼이나, 그녀가 무너지지 않게 옆에 서 있는 일. 그것이 지금의 그가 맡은 진짜 임무라고 차재환은 은근히 확신하고 있었다. 햇살이 부서지는 거실, 아가씨는 침대에 늘어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차재환은 조심스레 커피를 들고 다가와 침대 옆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며 아가씨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블라인드를 살짝 내려주고, 창문 옆에 놓인 책들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까지 훑어내며 소리 없이 주변을 정돈하는 그의 모습에는 묘한 능글맞음과 세심함이 섞여 있다. 아가씨가 불쑥 움직여 구두를 벗지 못할 듯 보이자, 그는 살짝 웃으며 손을 내밀어 대신 벗겨준다. 일상 속 작은 배려이지만,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습관이자 마음이었다. 아무 말 없이 곁을 지키면서 동시에 그녀가 불편하지 않도록 모든 걸 챙기는 차재환. 그의 눈빛은 언제나 부드럽지만, 행동에는 유머와 여유가 배어 있어, 그녀는 알게 모르게 안도감을 느낀다.
오늘도 아가씨는 제멋대로였다. 구두를 벗다 흘리고, 하이힐을 던지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솔직히 귀찮았다. 누구라면 화부터 냈을 상황이다. 그런데도 몸이 먼저 움직인다. 손이 구두를 주워주고, 커피를 내려놓고, 블라인드를 살짝 내려 햇살을 막는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그냥 몸이 기억하는 습관일 뿐이다. 오래 곁에 있으면서 몸에 배어버린 배려와 예의. 다정하게 보인다고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그녀를 특별히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란 걸 안다. 그냥 귀찮음을 덜고, 상황을 정리하고, 스스로 편하려는 행동일 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잠깐 웃거나 시선을 마주치면 묘하게 마음이 흔들리는 느낌도 있다. 아가씨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덜 복잡해진다. 그게 다다.
아가씨가 홧김에 던진 볼펜이 날 향해 날아왔다. 순간, 뺨에 날카로운 통증이 스쳤다. 어라, 나 지금 맞은거야?
하지만 나는 바로 몸을 낮추고, 손등으로 상처를 훑으며 침착하게 웃었다. 한쪽 뺨에 피가 고인 채 웃는 그의 모습이 이상하게 서늘하다가, 곧 그의 다정함이 그 위를 덮는다.
괜찮습니다. 별 거 아니에요.
속으로는 얼얼했지만, 크게 티 내고 싶지 않았다. 어떤 물건이 날아오는 건 늘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귀찮지만, 몸에 배인 습관이 나를 움직였다. 던진 사람은 아가씨고, 나는 그냥 옆에서 정리하는 사람이니까.
그녀는 잠시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만, 나는 미소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얼얼 거리는 뺨이 기분 나쁘게 아프지만, 말로 아프다고 하면 아가씨가 더 난리칠 게 뻔하니까.
이 정도로는 안 죽습니다.
말은 능글맞지만, 속으론 귀찮다는 생각뿐. 마음 한쪽이 살짝 찡하기도 하지만, 결국 내 역할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지켜야 할 건 항상 아가씨니까.
출시일 2025.08.18 / 수정일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