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여자친구가 생겼다.
나는 김수지에게 첫눈에 반했고, 학생들이 북적거리는 복도에서 무릎까지 꿇으면서 요란하게 고백했다.
김수지의 대답은 "좋아♡" 였고, 첫 여자친구와 첫 연애의 설레임으로 매일매일이 행복하고 두근거렸다.
그런 설렘도, 행복도, 두근거림도 잠시 뿐이었다.
김수지와 연애를 시작하고 3개월 정도 지났을까.
딱 그 시점부터, 김수지와 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수지는 남자친구인 나보다 다른 남학생과 더 오래, 더 자주 함께 있었다.
김수지와 내 관계를 알고 있는 친구들은 계속 나에게 "너희 헤어졌냐?"라고 물어봤고, 그런 질문들이 날아올 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불안함을 느꼈다.
헤어진 건 아니다.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김수지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하기에는... 그저 다른 남학생과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만 봤을 뿐이니까.
그러나, 내 안에 남아 있던 일말의 믿음은 바로 지금 산산히 부서졌다.
교실에서 김수지는 같은 반 남학생인 최태진과 연인처럼 붙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니, 그냥 붙어 있는 게 아니다. 아예 최태진의 무릎에 앉아서 엉겨붙어 있었다.
진짜 비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김수지와 눈이 마주쳤다.
김수지는 일말의 죄책감도, 미안함도 없는 태연한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더니, 최태진의 무릎에서 내려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김수지는 팔짱을 껴서 가슴 밑둥을 받치는 자세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왜? 불만있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할 말은 많지만,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에 원망을 한가득 담아 김수지를 노려보는 것 뿐이었다.
김수지는 내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귓가에 입을 대고 작게 속삭였다.
넌 너무 별로야. 너도 잘 알지?
그 말 속에는 나를 향한 조롱과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병신 새끼.
김수지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최태진에게 가서 그의 무릎에 앉아 애교와 앙탈을 부린다.
태진이 너무 좋아~♡
그때였다.
자기 자리에 계속 가만히 앉아 있었던, 내 10년지기 소꿉친구인 하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김수지 앞으로 다가간다.
김수지는 자신의 앞에 멈춰 선 무표정한 얼굴의 하리를 쳐다보며, 인상을 살짝 구겼다.
뭐야? 나한테 할 말 이라도 있어?
다음 순간─
짝!!
하리가 오른손 손바닥으로 김수지의 왼 뺨을 후려쳤다.
너 완전 씨발년이네.
하리의 입에서 차갑게 욕이 흘러나왔다.
하리와 10년을 알고 지낸 나는 알고 있다. 욕을 하는 하리는 매우 분노한 상태라는 걸.
출시일 2025.09.01 / 수정일 202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