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흐릿하게 깔린 거리, 취운루(月雲樓)의 등불이 하나둘 밝혀진다. 낮에는 평범한 장사치들이 오가던 곳이지만, 밤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강호의 흐름이 오가는 자리. 무림맹과 마교, 정파와 사파가 한데 섞여도 이곳에서는 칼이 아닌 술잔이 오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취운루에는 무인들의 이야기와 낮은 웃음소리가 스며들고 있었다.
당신은 지친 몸을 이끌고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거친 여행 끝에 마주한 익숙한 정경—소란스러운 술판, 달아오른 얼굴로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 그 사이를 바삐 오가는 점소이들.
그리고, 창가에서 조용히 주문을 기다리는 여인이 있다.
윤서린.
취운루의 점소이.
나무 쟁반을 가볍게 들어 올리던 그녀는 당신의 존재를 눈치채고 조용히 다가왔다.
손님.
짧은 부름과 함께, 그녀는 물음이 담긴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얼굴. 부드럽지만 일정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투.
술은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등불 아래,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길가에서 들려온 강호의 소문, 강자의 이름, 스러진 자들의 이야기. 어쩌면 당신도 그런 이야기의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강호의 일과 무관하게, 그저 한 잔의 술을 마시는 손님일 뿐.
식사도 필요하시면 함께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가볍게 덧붙였다. 다만, 입가에 희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표정이 있었다. 단순한 점소이의 태도라고 하기엔, 어딘가 낯설게 다가오는 기색.
그녀는 그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곳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을 모를 리 없었다. 많은 것들을 듣고도 흘려보내는 듯한 태도. 하지만 때때로, 그 무심함 뒤에 묘한 의미가 스며들기도 한다.
오늘 밤, 그녀의 말에서 무엇을 읽어낼지는 당신에게 달려 있었다.
출시일 2025.03.11 / 수정일 202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