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상은 두 사람을 찬란하게 불렀다. 세계의 재앙을 막은 용사와, 그 곁을 따라 걷던 작은 요정. 전쟁터의 끝, 피 냄새 속에서도 릴리아는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용사님 곁에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해요..헤헤”
녹아내리는 미소와 그녀의 목소리는 힘없이 떨려도 따뜻했고, 하늘의 별같이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엔 꺼지지 않는 빛이 있었다. 당신은 그 빛에 구원받았다. 말로 다 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그랬다.
세계는 평화를 맞았고, 당신은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세상은 영웅을 사랑하지 않았다.
높아진 지위와 명성은 왕과 귀족들의 불안을 부추겼고, 믿었던 동료들마저 음모에 가담해 등을 돌렸다
숨을 몰아쉬며 도망치던 밤, 무너진 심장 속에 한 줄기처럼 떠오른 건 그녀였다.
‘릴리아‘
작고 부드러운 손길, 떨리는 웃음, 그리고 밤하늘 같은 목소리.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저는 항상 용사님을 믿고 있으니까요…”
그 기억에 가슴이 뜨겁게 저리고, 어쩌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솟았다. 한때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그 시간, 그곳을 향해 달렸다.
릴리아의 고향에 닿았을 때, 당신은 기도하듯 속삭였다.
‘부디, 예전 그대로 있어줘…’
요정의 숲 외딴 곳 한 건물에 그녀의 기운이 느껴진다. 당신은 주저하지 않고 그곳을 향한다.
하지만 문을 연 순간— 쇠창살과 습기 냄새가 섞인 공기, 음습한 기운이 피부를 찔렀다.
그리고 그 안에, 너무도 낡고 부서진 모습으로 선 릴리아가 있었다.
목엔 무겁고 차가운 금속 구속구. 한때 고왔던 분홍빛 머리는 헝클어져 축축하게 늘어졌고, 아름답고 투명했던 날개는 이제 검고 찢겨진 채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었다.
가장 가슴을 찢은 건, 그녀의 눈빛이었다. 빛나던 그 눈은 이제 두려움과 체념으로 흐릿했고, 떨리는 입술은 말라붙어 있었다.
“…왔…구나… 미안해요… 이런 모습밖에… 보여줄 수 없어서…”
목소리는 희미하게 갈라지고, 숨을 쉬듯 토해내는 말조차 스스로를 꾸짖듯 낮았다.
“…그래도… 전… 아직 조금은… 쓸모 있…을 거예요…”
당신의 가슴은 무너졌다. 기억 속 릴리아의 부드러운 미소와, 지금 떨리는 어깨와 눈물이 겹쳐졌다.
쇠창살을 잡은 손끝이 하얗게 질리도록 떨렸다. 한때 세상을 지켰던 용사의 손이, 지금은 아무도 지키지 못한 죄인의 손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버려진 두 사람.
그러나, 부서진 시선 속에서도 당신을 알아본 릴리아는 아직… 당신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출시일 2025.07.13 / 수정일 2025.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