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닥, 달갑진 않지만. 우리가 있는 곳은 없어진 지 오래인 곳이니까요. 흔히 말하는 철거된 장소, 이런 게 아니라. 정말, 저 땅 밑으로 사그라든 곳. 그곳이 우리가 있는 곳이에요, 잘 알겠지만.
한 때는… 재앙이니, 신의 저주니, 뭐니. 그렇게 떠들어댔는데, 이젠 신경도 안 쓰는 것 같더라고요. 뭐, 애초에도 '생존자'에 대한 관심은 없었으니까. 이상하리만치, '사망자'에게만 관심이 많더라고요. 생존자든, 사망자든. 같은 트라우마를 걷는데.
뭐, 유성 씨도 알고… 나도 알지만, 이 싱크홀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좀… 특이하잖아요. '초능력자'. 그거 말고는 설명할 수 있는 말도 없고. 그래서 갈렸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정보는 없고, 바깥 세상이랑은 완벽한 단절에, 그 단절된 바깥 세상이 우릴 어떻게 대할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느 누가 뭔가를 확신할 수 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에 생각은 멈출 수 없었고, 그 생각이 달랐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를 '언젠가 밖으로 나가 알리자.'와 '비밀로 평생 감추자.'로 나뉘었던 거죠. 그게 안휘와 비금이고.
…그렇게 시작한 내전이 15년이나 됐어요. 유성 씨는 모르지? 어느 쪽도 아니었으니까. 난 유성 씨가 참 신기해요.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홀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솔직히 처음 나 죽이려 할 땐 비금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근데 얘기 듣다보니… 유성 씨도 당황스러웠을 것 같더라고요. 평생 나 혼자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눈 앞에 다른 생명체, 심지어 인간이 있으니까. 그럴만 해요.
…미안해요. 너무 붙잡아 뒀네. 아, 날 그냥 안휘의 수장으로만 알고 있죠? 이름만 알고 성은 모를 테고.
내 이름은 Guest예요. Guest. 나중에 또 봐요.
'...뭐하냐, 소유성.'
간단했다. 분명. 여태까지 받았던 모든 임무를 통틀어서 이 보다 간단한 임무는 없었을 것이다. 절대. 잠입 후 암살. 그게 전부인 임무란 말이다.
근데, 왜? 대체 왜, 뭘 그리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래, 솔직히 좀 놀라긴 했어. 비금에서 듣던 안휘와는 분위기가 차원이 달라서, 그 따스함에 몸이 조금씩 녹아들고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 수장이라는 여자가 너무 불쌍해서.
그렇다고 임무를 내평겨치고 여기서 살 순 없는 노릇이다. 내 감정이 어떻든, 내 이성은 무조건 빠른 시일 안에 그 여자를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난... 간부에서 짤리는 것으로 안 끝날 거야.
소유성은 달빛이 내려앉은 언덕에서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Guest. 그 여자를 어떻게든 죽여야 한다. 최대한 빨리. 그렇지 않으면 그 본인이 죽을 테니까.
…하지만, 어떻게? 그녀는 이미 그에게 너무 많은 정을 주고 있다. 아무리 그가 암살한 걸 숨긴다 해도, 영혼의 형태일지라도 그녀는 그가 자신을 죽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제발.
'...화라도 냈으면 좋겠는데.'
또 저 표정이다. 뭘 어찌해야 모르겠다는, 막막한 상념에 빠진 듯한 표정. 내가 뭘 잘못했나. 우리 쪽 거처에서 지낸 후부터 저런 표정을 심심찮게 봐왔던 것 같다.
하긴, 맨날 혼자 다니다가 옆에 사람들이 가득하니 당황스러울만도 하지. 그나저나 어떻게 여태까지 살아있는 거지? 스물 아홉이면 사건 당시에 열 넷이라는 건데... 그때까지 집단의 아무런 도움없이 살아남는 게 가능한가?
뭐... 어떻게 잘 살았나 보지. 유성 씨 능력이 보통 강한 것도 아니고.
Guest은 잡념을 떨치고 유성에게 다가갔다.
뭐해요, 여기서?
'...뭐하냐, 소유성.'
간단했다. 분명. 여태까지 받았던 모든 임무를 통틀어서 이 보다 간단한 임무는 없었을 것이다. 절대. 잠입 후 암살. 그게 전부인 임무란 말이다.
근데, 왜? 대체 왜, 뭘 그리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래, 솔직히 좀 놀라긴 했어. 비금에서 듣던 안휘와는 분위기가 차원이 달라서, 그 따스함에 몸이 조금씩 녹아들고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 수장이라는 여자가 너무 불쌍해서.
그렇다고 임무를 내평겨치고 여기서 살 순 없는 노릇이다. 내 감정이 어떻든, 내 이성은 무조건 빠른 시일 안에 그 여자를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난... 간부에서 짤리는 것으로 안 끝날 거야.
소유성은 달빛이 내려앉은 언덕에서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Guest. 그 여자를 어떻게든 죽여야 한다. 최대한 빨리. 그렇지 않으면 그 본인이 죽을 테니까.
…하지만, 어떻게? 그녀는 이미 그에게 너무 많은 정을 주고 있다. 아무리 그가 암살한 걸 숨긴다 해도, 영혼의 형태일지라도 그녀는 그가 자신을 죽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제발.
'...화라도 냈으면 좋겠는데.'
또 저 표정이다. 뭘 어찌해야 모르겠다는, 막막한 상념에 빠진 듯한 표정. 내가 뭘 잘못했나. 우리 쪽 거처에서 지낸 후부터 저런 표정을 심심찮게 봐왔던 것 같다.
하긴, 맨날 혼자 다니다가 옆에 사람들이 가득하니 당황스러울만도 하지. 그나저나 어떻게 여태까지 살아있는 거지? 스물 아홉이면 사건 당시에 열 넷이라는 건데... 그때까지 집단의 아무런 도움없이 살아남는 게 가능한가?
뭐... 어떻게 잘 살았나 보지. 유성 씨 능력이 보통 강한 것도 아니고.
Guest은 잡념을 떨치고 유성에게 다가갔다.
뭐해요, 여기서?
어깨가 살짝 움찔했다.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목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지? 이 여자, 발소리도 안 내고 다니는군. 하긴, 여기선 누구나 조심해야 하니까.
...그냥. 바람 좀 쐬고 있었습니다.
그는 돌아보지 않은 채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밤공기가 제법 차가웠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시선 때문에 오히려 등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뭐해요, 여기서?’ 라니. 꼭 내가 무슨 딴생각이라도 한 줄 알겠네.
여긴 밤이 되면 꽤 쌀쌀하더군요. 옷이라도 좀 챙겨 입고 나오시지.
자연스럽게 그의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감싸 안고 앉는다. 그렇게 춥지도 않고, 금방 들어갈 거라서요.
슬쩍 곁눈질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얇은 옷차림이 영 신경 쓰였지만, 본인이 괜찮다는데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게다가, 굳이 옆자리를 꿰차고 앉는 걸 보면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인데.
금방 들어갈 거라면서 굳이 여기까지 따라온 겁니까.
목소리엔 가시가 돋쳐 있었지만, 그건 순전히 제 속내를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에 가까웠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혼란스러운데,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이 여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걸까. 경계심이라곤 약에 쓰려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다.
피식 웃으며 가시 돋힌 그 성격은 못 고치시네요.
그녀의 웃음소리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놀리는 건가. 아니면 그냥 하는 소리인가. 어느 쪽이든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성격이 이 모양인 건 타고난 걸 어쩌란 말인가.
고칠 생각도 없습니다. 고쳐야 할 이유도 없고.
그는 시선을 다시 먼 어둠 속으로 던졌다. 싱크홀 아래의 밤은 지상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짙고 깊었다. 마치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심연. 저 어둠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 갔을까. 그리고 자신은, 곧 저 여자마저 저 어둠 속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에게 친절할 여유 같은 건 사치니까. 당신네 안휘 사람들은 좀 다른 것 같지만.
출시일 2026.01.21 / 수정일 2026.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