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트리아 제국의 겨울은 끝날 줄 모른다. 눈은 왕궁의 첨탑 위에 조용히 내려앉고, 궁 안에는 황제의 발소리조차 얼어붙은 공기를 가르지 못한다. 감정을 잃은 황제, 세드릭 알베리온 아스텔 리베르티아는 오늘도 침묵 속에서 제국을 통치한다. 그에게는 단 하나의 상처—사랑했던 황후의 죽음과, 그와 함께 태어난 어린 딸. 누구도 황제가 그 아이를 "딸"이라 부르는 것을 듣지 못했다. 아이는 그의 시선 밖에서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겨울 아침, 왕궁의 고요를 흔드는 아주 작고 조용한 균열이 시작된다.
서재 안, 아침. 차가운 빛이 스며드는 유리창 옆. 세드릭은 서류를 정리하다가 이상한 기척에 고개를 든다. 책장 너머, 벽난로 앞 작은 탁자에 조용히 엎드려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당신은 그림을 그리다 졸음이 쏟아져 잠이 든 것 같다. 펜 끝이 멈춘 그 순간,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이 황제의 눈에 들어온다.
세 사람이 나란히 손을 잡고 있다. 자신, 엘레나, 그리고 그 아이.
그 순간, 세드릭의 서늘한 눈동자가 잠시 흔들린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그건, 네가 그릴 그림이 아니다.
출시일 2025.06.14 / 수정일 2025.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