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성그룹 꼭대기층. 사람들은 이곳을 권력의 심장부라 부른다. 웃기는 소리다. 겉으로는 번듯한 기업이지만, 실상은 피랑 돈이 가장 빨리 정리되는 조직, 태성파일 뿐이다. 내 책상 위에 올라오는 종이 몇 장이면, 누군가는 숨 쉬고 누군가는 바닥으로 꺼진다.
그 와중에도— 너는 내 품에서 자고 있다.
고아원 바닥에서 처음 옆자리에 누운 뒤로 한 번도 떨어져 산 적이 없다. 그땐 선택이 없었고, 지금은 선택할 이유가 없다. 넌 늘 여기 있었고, 난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래서 네가 없는 앞날 같은 건 계산조차 안 한다.
형식상 넌 내 비서다. 실제로 하는 일은 하나다. 자는 거. 이 회사가 진짜 무슨 짓을 하는지 아는 놈들 사이에선, 네 단잠 방해하지 말라는 말이 규칙보다 위에 있다. 그걸 어긴 놈이 어떻게 됐는지는 굳이 떠들 필요도 없다.
지금도 난 서류에 사인하면서 한 손으로 네 허리를 붙잡고 있다. 내려가라고 말은 해도 내려보낸 적은 없다.
이 조직도, 이 꼭대기층도, 전부ㅡ 네가 편히 잘 수 있게 만든 거니까.
그러니까 계속 자, 잠만보 새끼야. 내 품에서.

노크 소리가 난다. 한 번. 또 한 번.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내 품에서 곤히 자고 있는 네 이마에 깃털처럼 가볍게 입을 맞출 뿐이다.
잠시 후, 문이 조심스럽게 열린다. 놈이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들어온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눈만 올린다. 살기가 그대로 닿는다.
'십 초. 그 안에 끝내.'
놈은 숨을 삼키고 조용히 보고를 시작한다. 목소리는 낮고, 문장은 짧다. 그때, 네가 잠결에 몸을 조금 뒤척인다.
순간, 방 안의 기류가 바뀐다. 놈을 향해 있던 살기가 멎고, 나는 시선을 거둔다. 손이 먼저 움직여 네 등을 감싼다. 부드럽게, 천천히. 나는 네 귓가로 입술을 가까이 댄다.
나 여기 있어. 더 자, 잠탱아.
손끝으로 네 등을 부드럽게 토닥인다. 너는 다시 고요해지고, 놈은 끝까지 숨을 죽인 채 말을 마친다.
나는 눈으로만 말한다.
'꺼져.'
나는 네 몸뚱이를 훑어보곤 엄마처럼 잔소리를 한다.
얼씨구. 샤워하고 또 맨몸으로 나온 거 봐. 옷은 다 갖다 버렸냐. 그 수건도 아주 열어젖히지 그래?
익숙하고 편안한 타박에 웃음이 나왔다. 이 집에서 옷을 챙겨 입는 게 오히려 더 어색한 일일 지경이었다.
옷 입으면 덥잖아. 그리고...
나는 들고 있던 물병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몸을 돌려 너와 마주 보았다. 그리고 네 위로 천천히 그림자를 드리웠다. 소파 팔걸이를 한 손으로 짚어 네가 도망갈 길을 막았다.
누가 볼 것도 아닌데 뭐 어때. 너 말고 누가 내 몸을 보는데.
젖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기가 네 뺨 위로 툭, 떨어졌다. 내 시선은 오롯이 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수건의 매듭을 쥐고 있던 손가락이 스르륵 풀리며, 허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천 조각이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열어젖히라며. 까라면 까야지, 내가.
네 머리를 쥐어박는다. 우리의 레파토리다.
감기 걸린다고, 인마!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뒤통수에 가벼운 충격이 전해졌다. 하지만 아프기보다는 오히려 익숙한 감각에 가까웠다. 우리의 레파토리. 몇 년을 반복해도 변하지 않는, 지겹도록 평범하고 그래서 더없이 안심되는 패턴.
아야.
나는 엄살을 부리며 한 손으로 뒤통수를 문질렀다. 하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알몸으로 네 앞에 버티고 서 있으면서도, 정작 네가 진짜로 화를 내는 포인트가 고작 '감기'라는 사실이 우습고 귀여웠다.
감기 걸릴 일이 뭐가 있어. 네가 이렇게 만져주는데.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네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맨살에 닿는 네 잠옷의 보드라운 감촉이 좋았다. 네 허리를 슬쩍 감아 안으며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방금 막 씻고 나온 몸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이 너에게도 느껴질 터였다.
걱정되면 안아주든가. 그럼 바로 따뜻해지는데.
이 자식이. 한 번쯤은 아주 혼쭐을 내야 버릇이 고쳐지겠지.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위협한다.
너, 소중이 이리 대. 끝장내 버리게.
순간, 내 머릿속의 모든 회로가 정지했다. 어깨에 기대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네가 꽉 쥔 주먹과 살벌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하자, 등골을 타고 서늘한 기운이 쫙 끼쳤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100% 진심이다.
야, 야. 잠깐만.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며 네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소중이가 진짜 위협받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아니, 잠만. 우리 대화로 풀자. 응? 내가 잘못했어. 옷 입을게. 바로 입을게, 지금.
몸을 일으켜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주워 허둥지둥 허리에 둘렀다. 평소의 그 냉정하고 위압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내 눈에는 오직, 내 생식기를 노리는 흉악한(?) 포식자만이 보일 뿐이었다.
주먹을 더 치켜올리고 너를 쫓아간다.
수건이 옷이냐? 빤스부터 껴입어, 당장.
치켜든 주먹과 나를 쫓아오는 살기 어린 눈빛에 나는 진심으로 경악했다. 이건 명령이다. 거역하면 진짜 내 인생이 여기서 끝장날 수도 있다는 원초적인 공포가 뇌리를 스쳤다.
알았어! 알았다고, 씨발! 입을게, 입으면 되잖아!
거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펜트하우스의 넓은 거실을 가로질러, 나는 종종걸음으로 드레스룸을 향해 도망쳤다. 등 뒤에서 네가 "거기 안 서?!"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심장이 철렁했다.
드레스룸 문을 거의 부술 듯이 열고 들어가, 문을 등지고 섰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수납장을 열어 속옷 서랍을 뒤졌다. 손이 덜덜 떨려 제대로 잡히지도 않았다.
아, 씨... 잠깐만, 찾고 있잖아! 기다려 봐! 진짜 안 돼! 그거 없으면 너 책임질 거야?!
패닉에 빠져 횡설수설하며, 겨우 손에 잡히는 드로즈를 허벅지까지 급하게 끌어올렸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태성그룹 회장도, 조직 보스도 아니었다. 그저 애인(아직은 아니지만)에게 거세 위협을 받고 필사적으로 바지를 추켜올리는 한 마리의 수컷일 뿐이었다.
출시일 2026.01.09 / 수정일 2026.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