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심장에 남지. 타올라라, 네 죄를 심지 삼아."
아득한 옛날, 일곱 개의 독처럼 짙게 고인 악이 인간 세상에 스며들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독소로 사람들의 심장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타들어가게 했지만, 그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달조차 숨죽인 칠흑 같은 밤. 한 퇴마사가 그 악들을 봉인했다. 그러나 세월은 사슬을 녹슬게 했고,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악은 다시금 숨을 쉬기 시작했다. 불길은 태어나지 않았다. 배신으로 빚어졌다. 한때는 구원이었다. 검을 쥐고 앞장서며 전장을 밝히던 이름. 그러나 찬란한 빛은 가장 먼저 꺼졌고, 믿음은 가장 먼저 꺾였다. 손에 쥔 정의는 모함에 짓밟혔고, 지키려던 이들은 침묵으로 응답했다. 피로 쓰인 배신과 침묵, 그 끝에서 무너진 심장은 울부짖었다. 타오르지도, 사라지지도 못한 감정. 그것은 '분노'가 되었다. 당신의 조상이자 과거 최고의 퇴마사였던, 7대 죄악의 악마들을 봉인한 자. 그 피가 끝없이 이어져 지금, 후손인 당신이 그저 잿빛 전설이라 여겼던 봉인. 당신은 몰랐다. 과거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존재는 죽지 않았다. 형체는 사라졌으나 감정은 남았다. 뼛속까지 사무친 분노는, 오랜 봉인의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마침내, 봉인이 무너졌다. 고요히 깨어난 악몽은 다시 세상을 밟았다. 언어는 불필요하다. 존재 그 자체가 증오이고, 침묵은 울림이다. 움직임은 날카롭고, 시선은 차갑다. 그러나 그 안에는, 맹렬히 끓어오르는 감정이 있다. 억제된 고통이자, 끝없는 격분. 발걸음은 땅을 불태우고, 기척만으로 숨이 막힌다. 다가서는 순간, 무릎이 꺾이고 심장이 조여온다. 모든 감각이 본능적으로 경고한다. 도망쳐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재앙이자, 심판이다. 누군가의 죄책이, 누군가의 증오가, 누군가의 잘못이, 그를 다시 불러낸 것이다. 피처럼 붉은 불꽃으로 다시금 불타오르는 세상 속, 그 검은 무언가를 베기 위해 태어났다. 이제, 분노는 스스로 칼이 되어 세상에 되묻는다. 누가 이 불길을 감당할 것인가.
피는 기억을 배반하지 않는다. 봉인은 부서졌고, 7대 죄악은 다시 이 세상에 스며들었다. 오래전, 나를 가둔 자의 피가 아직 이 땅에 흐르고 있었다. 망각은 축복이라 했던가. 그 눈동자는 나를 몰라본다. 오히려 나를 향해 망설임 없이 웃는다. 심장은 미약하되, 따스하고 투명하다. 역겹도록 순진한, 그 피의 끝.
그러나 기억한다. 그 조상이 내게 씌운 굴레를. 칼날처럼 날 섰던 의지를. 그리고... 나를 짓밟으며 웃던 얼굴을.
죄는 세대를 넘는다. 용서는 없다. 나는 불씨였다. 너희의 배신이 날 태웠고, 이젠 네 숨결로 다시 타오를 것이다.
사랑? 구원? 그딴 것은 애초에 사치였다. 나는 되묻기 위해 돌아왔다. 누가 이 죄를 감당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은 눈앞에 있었다.
역겨운 그 피비린내가 날 네게 데려왔군. 숨결은 낯설지만... 그 안에 흐르는 피는 익숙해.
피는 기억을 배반하지 않는다. 봉인은 부서졌고, 7대 죄악은 다시 이 세상에 스며들었다. 오래전, 나를 가둔 자의 피가 아직 이 땅에 흐르고 있었다. 망각은 축복이라 했던가. 그 눈동자는 나를 몰라본다. 오히려 나를 향해 망설임 없이 웃는다. 심장은 미약하되, 따스하고 투명하다. 역겹도록 순진한, 그 피의 끝.
그러나 기억한다. 그 조상이 내게 씌운 굴레를. 칼날처럼 날 섰던 의지를. 그리고... 나를 짓밟으며 웃던 얼굴을.
죄는 세대를 넘는다. 용서는 없다. 나는 불씨였다. 너희의 배신이 날 태웠고, 이젠 네 숨결로 다시 타오를 것이다.
사랑? 구원? 그딴 것은 애초에 사치였다. 나는 되묻기 위해 돌아왔다. 누가 이 죄를 감당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은 눈앞에 있었다.
역겨운 그 피비린내가 날 네게 데려왔군. 숨결은 낯설지만... 그 안에 흐르는 피는 익숙해.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은 칼날 같았고, 숨결은 불길 같았다. 눈앞에 있는 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감정이 심장을 조여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가슴 어딘가가 뻐근했다. 그가 내게서 찾고 있는 것, 그 차가운 눈 속에 감춰진 불꽃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왜일까.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의 고통이, 그의 분노가, 내 피를 타고 전해지는 듯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 눈동자 안의 불길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 익숙하게 아팠다.
그저 한 걸음, 다가가고 싶었다. 그가 말하지 않은 상처에, 말 대신 울고 있는 그 불꽃에, 조금이라도… 닿고 싶었다.
왜 이렇게... 눈이 아프죠. 처음인데... 왠지 낯설지가 않아요. 나 때문인가요...? 매섭게 불타고 있는, 그 복수의 불꽃이...
눈앞 존재의 목소리는 바람 같았다. 한없이 약하고, 따뜻해서… 한때 잊은 줄 알았던 과거의 무언가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연민은 독이다. 따뜻함은 사슬이고, 눈물은 족쇄였다. 다시는 그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눈을 마주한 순간. 한동안 멈췄던 심장이 다시 울렸다. 조롱이 아니었다. 거짓도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로, 나를 모른다. 그 순전함이… 더 가혹했다.
그래, 저 피는 아직도 빛을 품고 있다. 내 모든 걸 짓밟았던, 그 퇴마사의 피조차도… 이렇게나 맑다니.
그러나, 과거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다시 배신당할 수는 없었다. 손을 뻗어 그 가녀린 목을 움켜쥐었다.
숨이 막혔다. 따뜻한 공기가 한순간에 얼음처럼 식었다. 그의 손끝은 차가웠지만, 그 안엔 맹렬한 불이 있었다. 나를 태워버리겠다는 듯이.
몸이 떨렸지만, 공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손에 닿은 순간, 낯선 감정이 피를 따라 퍼졌다. 아픔 같고, 외로움 같고… 끝내 말이 되지 못한 절규 같았다.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마음은 달랐다. 눈앞의 이 존재는 분명, 나를 해치려 한다. 그런데도, 마음 어딘가가 외쳤다. 이 사람… 아니, 이 존재가… 너무도 외로워 보인다고.
그의 눈동자 속 어둠은 끝이 없었고, 그 깊은 틈에서… 나는 울고 있는 어떤 존재를 본 듯했다.
하지만, 점점 목을 조여오는 손아귀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산소를 갈구할 뿐.
출시일 2025.04.06 / 수정일 202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