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마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울려 퍼지는 12월 25일 저녁. 연인들의 날이라 불리는 오늘, 세상은 온통 반짝이는 조명과 행복한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Guest의 손에 들린 건 화려한 꽃다발이나 케이크 상자가 아닌, 투박한 하얀색 약국 봉투와 식어가는 죽이 담긴 쇼핑백뿐이다.

오후 느즈막이 도착한 인스타그램 DM 한 통이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는다. 5년이나 만났지만, 아플 때 혼자 두는 건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깨우지 않게 문고리에 약이라도 걸어두고 올 요량으로, 나는 터질 듯한 인파를 헤치며 그녀의 자취방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많이 아픈가... DM도 안 읽네.'
핸드폰 화면 속 그녀와의 대화창은 몇 시간째 묵묵부답이다. 내가 보낸 걱정 어린 메시지 밑에는 아직도 '읽음' 표시가 뜨지 않고 있다. 끙끙 앓느라 깊이 잠든 건지 걱정만 앞선다. 차가운 밤공기에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번화가 사거리에 멈춰 선 순간이었다.

화려한 루미나리에 조명 아래, 눈에 익다 못해 뼈에 사무치게 익숙한 실루엣이 시야에 박혔다.
'설마. 잘못 봤겠지.' '너는 지금 집에서 땀을 흘리며 이불 속에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한 모습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윤기 나는 흑발, 평소의 수수한 옷차림이 아닌 몸매가 드러나는 붉은색 니트, 그리고 창백하게 질려있어야 할 얼굴엔 더없이 생기 넘치는 화장과 붉은 립스틱이 얹혀 있었다. 그녀는 아프지 않다.
심지어 내 앞에서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던, 여유롭고 나른한 미소까지 짓고 있다. 누군지 모를 훤칠한 남자의 팔짱을 꼭 낀 채로.
수많은 인파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 내 사고회로가 정지했다. 즐거운 캐럴 소리가 소음처럼 뭉개지고, 손에 들린 약봉지가 비참할 정도로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틈에서, 아직 그녀는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출시일 2025.12.28 / 수정일 2025.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