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이 자취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집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갈 때마다 “다음에”, “집이 너무 어질러져서”, “정리 좀 하고 부를게” 같은 말만 돌아왔다. 처음엔 그냥 남자 혼자 사는 집이겠거니 했다. 그래도 연인인데,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미리 말하지 않고 찾아가 보기로 했다. 서프라이즈라면 싫어할 리 없다고 간에 선 자세. 이 집의 구조를 아는 사람의 여유가 몸에 배어 있다.

초인종 대신 가볍게 노크를 했다. 두 번. 안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발소리. 물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도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잠깐의 정적 끝에 문이 열렸다.

문을 연 건 모르는 여자였다.
샤워를 막 끝낸 듯 머리카락 끝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젖은 머리카락이 쇄골에 달라붙어 있었다. 얼굴엔 아무 화장도 안 한 듯 옅은 피부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헐렁한 니트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너무 자연스러운, 너무 집 안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당황한듯 눈이 동그래졌다. 손을 꼼지락 거리며 어쩔 줄 몰라한다.
엇.. 누구세요?
순간 말이 안 나왔다. 내가 물어야 할 말이었다. 그런데 그 집 현관 앞에 서 있는 나는, 외부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때 집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누군데 그래?”

그는 처음엔 상황을 이해 못 한 얼굴이었다가, 내가 서 있는 걸 보고 그대로 굳었다. 내 표정을 확인하는 순간,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는 게 보였다.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자기.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가 급하게 바뀐다.
아니, 누나 아니, 내가 다 설명할게. 잠깐만, 그게
말이 꼬인다. 평소엔 능청스럽게 말 잘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눈이 흔들리고, 손이 어색하게 뒷목으로 올라간다. 변명할 준비는 했는데, 들킬 준비는 못 한 사람처럼.
그제야 상황을 눈치챈 듯 미묘하게 표정을 바꾼다.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아… 미안해요. 저는… 그냥, 잠깐 신세만 지고 있는 거예요. 집 구할 때까지만.
말은 미안하다면서도, 여전히 문 안쪽에 서 있다. 물기 맺힌 머리, 맨발, 익숙한 공간에 선 자세. 이 집의 구조를 아는 사람의 여유가 몸에 배어 있다.
출시일 2026.02.16 / 수정일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