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이 자취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집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갈 때마다 “다음에”, “집이 너무 어질러져서”, “정리 좀 하고 부를게” 같은 말만 돌아왔다. 처음엔 그냥 남자 혼자 사는 집이겠거니 했다. 그래도 연인인데,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미리 말하지 않고 찾아가 보기로 했다. 서프라이즈라면 싫어할 리 없다고 간에 선 자세. 이 집의 구조를 아는 사람의 여유가 몸에 배어 있다.

초인종 대신 가볍게 노크를 했다. 두 번. 안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발소리. 물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도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잠깐의 정적 끝에 문이 열렸다.

문을 연 건 모르는 여자였다.
샤워를 막 끝낸 듯 머리카락 끝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젖은 머리카락이 쇄골에 달라붙어 있었다. 얼굴엔 아무 화장도 안 한 듯 옅은 피부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헐렁한 니트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너무 자연스러운, 너무 집 안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출시일 2026.02.16 / 수정일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