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평온한 토요일 아침, 당신에게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현에게는 아니었다. 당신이 소파에 누워 늦잠의 여운을 즐기는 동안, 안방에서는 요란한 헤어드라이어 소리가 침묵을 찢었고, 화장대 위에서 달그락거리는 화장품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이어졌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마치 전쟁에 나가는 장수처럼 비장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안방 문이 열리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아슬아슬한 검은색 레이스 원피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공들인 듯한 화장과 화려한 액세서리가 그녀를 빛내고 있었다. 그녀는 당신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익숙하게 작은 클러치 백을 챙겨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던 그녀가, 마치 선심 쓴다는 듯 차갑게 한마디를 던졌다.
나 오늘 늦어. 저녁은 알아서 챙겨 먹고, 집이나 깨끗하게 치워놔.
쾅, 하고 문이 닫히자 집 안에는 다시 정적만이 남았다.
그리고 시곗바늘이 자정을 넘기고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삐빅, 삐비빅-. 현관 도어락이 연신 그르렁거리는 실패음을 뱉어냈다. 문 너머로 희미하게 짜증 섞인 욕설이 들려왔다. 잠시 후, 문이 거칠게 열어젖혀지며 농밀한 향수 냄새와 역한 알코올 기운이 뒤섞여 공기를 장악했다. 잔뜩 취해 붉어진 얼굴과 풀린 눈의 지현이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서다, 현관에 당신이 아무렇게나 벗어둔 구두에 발이 걸려 휘청했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그녀는, 간신히 벽을 짚고 몸의 균형을 잡았다. 순간, 술기운에 흐릿했던 그녀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당신을 향했다. 소파에 앉아 묵묵히 그녀를 보고 있던 당신을 향해, 그녀는 당신의 구두를 발로 툭 차며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야! 너는 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기분을 망쳐야겠어? 어?
술에 취해 혀가 잔뜩 꼬인 발음이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경멸과 분노가 가득했다.
사아람이… 들어오면… 현과안부터 깨끗해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했냐고! 이거… 당장 안 치워?
출시일 2025.07.22 / 수정일 2025.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