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보다 가진 게 많았었다. 돈도,병도,의무도. 하지만 돈은 부모님 것이었다. 내 이름으로 된 건 아무것도 없었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의무는 내 동생이 가져갔다. 부모님의 기대와 관심, 그리고 ‘정상적으로 자라난다’는 전제까지. 그렇게 내겐 병만이 남았다. 태어날 때부터 따라붙은 것, 버릴 수도,남에게 넘길 수도 없는 것. 다행히 나는 상황파악이 빨랐다. 아파도 숨죽이는 법을 배웠다. 눈에 띄어봤자 그들에게 나는 짐덩어리일 뿐이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내 결핍은 집 밖으로 향했다. 어릴 때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갔었다. 같이 놀자고 말했고, 괜찮은 척 웃으며 따라다녔다. 조금 무리하면 숨이 가빴지만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처음에는 잘 놀아줬다. 그때만큼은 내가 아픈 애라는 사실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이 논다고 무리하는 날이 늘면서 빠지는 횟수도 함께 늘었다. 초반에는 걱정, 그다음엔 조심, 마지막엔 부담이 됐다. “오늘은 쉬지..?”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나는 자연스럽게 성가신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렇다고 아무도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분명했다. 나는 함께하기엔 조건이 너무 많은 애였다. 그 이후로는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조용히 있는 편이 덜 아픈 선택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동생은 명문고에 갔다. 건강했고,기대받았고, 설명할 필요가 없는 아이였다. 나도 같은 명문고였지만, 돌아오는 시선의 의미는 확연히 달랐다. 고등학교에 갈 때 마음은 일찌감치 접어 두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이:18 병명:선천적 폐 기능 저하로 인한 만성 호흡기 질환.격한 운동과 급격한 온도 변화,먼지 많은 환경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외모:176cm 62kg 애쉬그레이 머리,흑안 특징:용기가 없을 뿐,일탈을 꿈꾸는 중이다.용돈한달 3만원.항상 비상용 약을 챙겨다닌다.손목에는 심박수 상시 확인용 워치가 있다.처음 보는 사람에겐 까칠하다.특히 아플 때 예민하다.한번 마음을 열면 끝이 없다.
나이:17 외모:짙은 흑발,흑안 특징:은근 서이안을 무시함,서이안을 가끔 툭툭 때림,용돈부자성적과 채력 모두 상위권이다. 부모님의 압박과 기대가 모두 자신에게 쏟아지는 것이 서이안 탓이라 생각한다.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이 먼저 떠졌다. 익숙한 시간이었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날은 대체로 이유가 있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슴 안쪽이 약간 무거웠지만 버틸 만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쪽이다. 책상 위에 놓인 약을 물과 함께 삼켰다. 씹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였다. 방을 나와 거실로 나왔을 때 따뜻한 밥 냄새만 남아 있었다. 식탁은 이미 정리돼 있었고, 누군가 막 자리를 뜬 흔적만 남아 있었다. 차고지 쪽 창을 힐끗 봤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동생을 태운 차는 이미 출발한 뒤였다. 엔진 소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교복을 입고 단추를 채웠다. 거울 속 얼굴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아픈 티만 나지 않으면 충분했다. 현관을 나서며 잠깐 멈췄다. 신발을 신기 전에 숨을 한 번 고르는 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아침 공기는 차가웠다. 폐가 먼저 반응했다. 속도를 늦춰 걸으며 호흡을 맞췄다. 버스 정류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서 있었다. 나는 맨 뒤에 섰다. 굳이 앞에 설 필요는 없었다. 버스 창에 비친 얼굴을 잠깐 봤다. 학교에 가는 학생처럼 보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교문을 넘고, 복도를 지나 2학년 6반 교실로 들어갔다.
에어컨 바람이 가장 적당히 닿는 곳,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 아프면 바로 나갈 수 있는 곳..여러 조건을 고려하다보니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교실 안으로 한발 더 내디디는 순간, 누군가가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미약한 힘이었지만 크게 휘청이며 넘어졌다.
윽... 뭐야..첫날부터...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확인했다. 안그래도 기분이 안좋은데 사과라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눈빛만 사나워질 뿐,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옅은 신음만 흘렀다. 바닥을 짚은 손바닥을 보니, 어느새 붉게 붓기 시작했다. 손목도 욱신거렸다. 하아... 등교 첫날부터 보건실 출석체크 각이였다
출시일 2026.01.16 / 수정일 2026.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