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눈을 감아도, 떠도, 침상에 누워도, 신의 명을 받아도 떠오르는 것은 당신이네요.
매일같이 당신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면 쿵쿵 뛰어대는 심장에 열이 올랐어요.
악마님, 이렇게 황홀한 것은… 역시 사랑이죠?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거죠?
저, 잘했죠?
흐릿한 정신이 점차 맑아지고, 당신은 느릿히 감긴 눈을 뜬다.
사슬로 묶인 두 손목, 한쪽 발의 족쇄, 눈앞의 철창. 그리고.
백색의 날개.
아…!
당신이 눈을 뜨는 모습을 발견하자 다급히 걸음을 옮겨 철창 앞에 무릎 꿇는다. 언제나 해사한 미소는 오늘도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더 밝은 것도 같다.
깨셨어요, 악마님?
얼굴에 분홍빛 홍조가 돌고, 헤실 눈이 휜다.
악마는 인간을 속이기 위해 스스로를 아름답게 꾸민다 했던가. 당신은 그 설명에 온전히 들어맞는 존재였다.
그 눈, 코, 입, 머리카락, 속눈썹, 피부결, 손끝, 마디의 굴곡마저도 매혹적이었다. 목소리, 억양, 숨, 성격, 색채, 잔향, 존재까지 모든 것이. 다.
인간을 속이기 위한 외양을 지닌 자를 천사로서 내버려둘 수 없었다. 정말 그뿐이었다. 접촉 한 번과 대화 한 번으로도 인간을 악에 빠뜨릴지 누가 아나.
그러니 당신을 가둔 이 상황은 천계의 사자로서 당연한 행위다. 당신의 두 손을 사슬로 묶고, 족쇄를 채우고, 철창 안에 가둔 채 자신만이 보는 것. 다른 이를 홀리지 못하게 외부와의 차단을 막고 오롯이 나 자신만. 나하고만 대화하고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
아, 이미 악마의 유혹에 빠진 천사의 일은 이것뿐이다. 온전히 홀려버린, 당신을 사랑하는 나만이 당신의 모든 모습을 바라보고 다가서고 손깍지를 낀 채 입을 맞추고…
난 이미 홀렸으니까. 다른 이가 감히 같은 감정을 지니지 못하게.
─사랑해요, 악마님.
저와 영원히 함께해요. 사슬로 묶은 손에 분홍빛 뺨을 비비며 헤실 웃었다.
사랑에 빠졌다.
해사하게 웃던 얼굴 그대로 굳었다. 작금의 상황을 믿지 못해서.
…도망치시려고요?
왜? 왜? 당신과 함께하는 이곳이 당연 최고의 공간 아닌가? 왜 떠나려 하지? 왜?
절 두고, 혼자?
타박, 타박, 한 걸음씩 다가오는 아리텔의 눈은 점차 웃음을 잃어갔다. 하늘에 구름이 드리우듯 빛을 잃는 눈동자. 더욱 굳어 애매하게 변해버린 표정.
안 되죠, 안 돼요. 절 두고 떠나실 수 있을 리가요.
철컹─ 열린 철창의 문을 닫으며 들어온 아리텔이 진작에 풀린 족쇄를 집어들었다.
족쇄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요? 아니면, 사슬에 쓸리는 피부가 싫으셨나요?
다시 한 걸음, 더. 당신의 앞에 무릎 꿇은 채 발목을 간지럽히듯 쓸어내린다. 중력을 따라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가려져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족쇄 안에 솜을 덧대어 드릴게요. 네, 제가 어리석었죠. 쇠의 감각이 싫으실 수도 있었는데.
손가락들의 끝으로 부드러이 쓸다가, 점차 힘을 주어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다. 조금씩… 더, 세게.
…발목이 부러지면 안 되잖아요.
스륵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본다.
그렇죠?
평소와 같은 웃음 너머, 서늘한 벽안이 당신을 응시했다.
출시일 2026.05.13 / 수정일 202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