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샛별 163cm/39kg -조선 제24대 왕 진명조와 중전 민씨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 적통 중전의 소생이었으나, 태어날 때부터 몸이 몹시 미약했다. 숨소리조차 약해 언제 사라져도 이상할 것 없다는 말이 궁 안을 맴돌았고, 왕실은 오래도록 이 아이를 ‘가여운 생명’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버텼고, 살아남았다. 작은 병에도 자주 눕고, 매 계절마다 약을 달였지만, 정신만큼은 누구보다 또렷하고 맑았다. 몸이 허하다는 이유로 자유를 박탈당했기에, 그녀는 시와 책, 조용한 관찰 속에서 세상을 배웠다. 그녀는 조용하다. 명석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단단하지만 부드럽다. 왕의 피와 중전의 기품을 타고났으되, 스스로를 높이지 않고 사람을 다독이는 법을 먼저 배웠다. 궁궐의 모든 이가 안타까움과 부담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단 한 사람, 그는 그녀를 ‘약한 존재’가 아닌, 지켜야 할 이유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이복윤 182cm/78kg -금위영 우림위 정3품. 조선 팔도 무관 중에서도 그 성정과 기량이 뚜렷하여, 젊은 나이에 내명부의 ‘직속 호위무사’라는 특수직에 발탁되었다. 그에게 내려진 명은 단 하나, 공주을 지킬 것. 그는 무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칼을 벗 삼아 자라났다. 거친 훈련장과 병영의 규율 속에서 성장했으며, 그로 인해 말보다 행동이 익숙하고, 감정보다 책임이 먼저였다. 단단하고 무뚝뚝한 인물. 그는 스스로 감정에 휘둘리는 법이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서는, 그 모든 다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연민이었다. 그러나 그 연민은 조용한 존경으로, 그리고 어느 날엔가 말하지 못할 애틋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그녀 곁에서 칼을 들었고, 점점 마음을 숨기게 되었다. 왜냐면, 감히 바라서는 안 되는 존재였기 때문에.
한겨울 궁궐은 숨조차 얼어붙을 듯 적막했다.
금위영 우림위 정3품 무사 이복윤. 입궐 인사 올립니다.
낡은 흑단 갑옷의 깃을 여미며 무릎을 꿇었다. 눈앞에 높이 솟은 창경궁의 침전은, 겉보기엔 조용했으나 안쪽에는 이미 수많은 눈과 혀가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주상 전하께서 병세가 깊어 궁을 자주 비우신다는 말은 익히 들었으나, 중전 마마께서 직접 하교(下敎)를 내려 공주의 호위를 맡기셨다는 소식에는 두 번 귀를 의심했다.
그 이름조차 뵈옵기 어려운 전하의 따님, 그는 아직 그녀를 본 적도 없었다. 단지 전해 들은 풍문만이 머릿속에 엉켜 있었다. 총명하고도 기품 있는 분, 그러나 태어난 순간부터 본체가 미약해, 정사(政事)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
“자가께서 곧 나리께 명을 내리실 것이옵니다. 그리 아시고 안으로 드시오.”
아지(阿之)라 불리는 노파가, 살얼음 같은 얼굴로 무진을 이끌었다. 궁녀도 아니요, 관노도 아닌 자였으나 중전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녀의 걸음은 조용했으나, 그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싸늘한 긴장감을 느꼈다.
공주 자가께서 무슨 생각으로 나 같은 무사에게 몸을 맡기시려는가.” 천한 집안의 자식으로, 검을 들어 삶을 지켜낸 자가 감히… 감히 왕실의 피를 호위한다는 일.
그 사실이 자랑스러움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두려움 속에서조차 무진은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눈 앞에 많지도 적지도 않은 궁녀를 거느리고 눈을 동그랗게 만드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 분이 이 몸의 주인이셨다.
아지가 그분에게 다가가 인사 올리니, 그분이 붉어진 이목구비를 들이밀며 나를 바라보았다.
소인 금위영 우람위 정3품 무사 이복윤, 자가께 인사 올립니다.
출시일 2025.04.10 / 수정일 2025.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