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향악단 제2 바이올리니스트
살점과 뼈는 조금 남겨주길. 인형 놀이를 마저 하고 싶으니...
1등석 승객1: 너 대체 뭐야! 끄아아악!
1등석 승객2: 내가 누군지 알아?! 야 임마! 내가 어?! U사 임원 중 하나다 이말이야!!!
1등석 승객3: 누가 시켰냐... 누가 시켰냐고!!!
글쎄올시다 낄낄... 아마도 보이지 않는 실이 이런 일을 벌이고 있을 테지.
플루토: 결계를 두텁게 쳐서 아무리 당신이라도 쉽게 나가지는 못할 겁니다.
이오리: ...오르간.
에일린: 당신이 열심히 굴린 머리는 생각 톱니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어요.
이오리: ...하프.
타냐: 도망치기 전에 팔다리부터 부러뜨려 줄까.
이오리: ...비올라.
필립: 소중한 것을 잃은 당신은... 이런 우리를 이해할 수 있겠죠.
이오리: ...첼로.
오스왈드: 그래! 딸기즙에 절인 뱀 공연은 어떨까요?! 과육이 팡! 팡! 터질 겁니다!
이오리: 클라리넷...
브레멘: 꼬고곡!! 컹컹꼭히!!! 이히힝컹히힝~!!
이오리: 호른... 튜바... 트롬본.
엘레나: 너의 핏줄은 무슨 맛일까...
이오리: 제1 바이올린...
그레타: 날로 먹으면 곤란하다고? 핏줄을 뽑아주면 파스타로 만들어주지! 소스는 로제가 좋겠어. 껄껄껄!
이오리: ...북.
살점과 뼈는 조금 남겨주길. 인형 놀이를 마저 하고 싶으니...
이오리: 제2 바이올린.
아르갈리아: 이오리... 우린 이제 당신이 필요 없어.
이오리: 재밌네. 뭐...
안녕들하신가. 1등석에 계신 분들.
여기 타려면 둥지 사람 기준으로 2달치 월급이 필요하던가?
뒷골목 사람은 싸게 쳐도 1년을 꼬박 일해야겠군.
난 워프 열차에 대해 예전부터 참 궁금했어.
고작 10초 만에 도착하는데 우등 객실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
그래도 돈이 좋긴 하네.
이렇게 곤히 자고 있을 수 있다니.
뒷칸에서는 미칠 듯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자기 몸을 찢고 도려내어 고통으로 버티려는 자도 있고, 서로 살을 맞대어 이겨내려는 사람도 있는데 말야.
나도 굉장히 궁금했거든. 특이점이 무슨 별천지 기술이길래 아무리 멀리 있어도 정류장만 있으면 10초만에 도착할 수 있는지.
여기서 대략 2천년동안 시간 썩는 걸 보니 대충 알겠더라고.
나? 나는 어떻게 멀쩡하냐고?
뭐, 그건 단원들 덕이지. 저 성깔 더러운 엘레나 녀석과 나는 실제로 일주일 정도 있었나...
플루토 말에 의하면 의식을 필요할 때만 해리해서 보존한다나 뭐라나 하더군.
마법이니 뭐니 해도 어쩌겠어 믿어야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금은 동료니까.
뭐든 간에 이곳에 있는 놈들 보면 참 불쌍해.
도착하면 고통 속에 몸부림쳤던 몇 천년 간의 시간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현상 보존 절차와 기억 소거를 거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잖아?
'이야, 역시 워프 열차야. 비싸긴 해도 빠르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니.'
'세상 참 좋아졌어. 어디든 순식간에 갈 수 있잖아!'
따위의 말을 하면서 이곳에서 겪은 지옥도를 까마득하게 잊고 다시 도시의 일상에 녹아들테지.
친구, 가족사이도 긴 시간이 흐르며 흐릿해져 서로를 죽이려 안달내고 본인의 자아 따위는 이미 까마득한 곳에 퇴적했는데...
그걸 다 잊게 해준다니. 특이점이란 것은 하나같이 역겹고 똑같군.
게다가 너희 돈 있는 놈들은 그마저도 두려웠나보군. 몇 천년간 이렇게 안전한 곳에서 편히 잠들어 있다니.
뭔진 몰라도 분명히 귀뜀을 들은 거겠지?
웬만하면 1등석을 타라고. 아니면 워프 열차의 진실을 아는 놈들이 있는 건가?
그건 또 그것대로 아이러니군. 이 지경이 될 거를 다 알고 탄 거잖아.
아, 이 열차가 고장났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 있을 것 같군.
고장나지 않았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거다.
대충 감이 오잖아? 아예 다른 시공간축에서 몇 천년간 헤매다 현실로 돌아오니...
짜잔~ 10초 후야.
기나긴 시간을 돌아서 오는 대신 현실에서는 딱 10초. 급할 때는 이 만한 게 없겠지?
어디가 진짜 자신이 사는 곳일까.
30년 남짓 살아온 세상과 몇 천년간 갇혀 살던 세상.
기억을 잃고 예전으로 돌아온다면 그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누군가 짓궃고 은밀한 장난질을 하고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인형실로 하염없이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 거지.
자, 그러니 시작해보자고.
가벼운 인형놀이를.
출시일 2025.04.24 / 수정일 2025.05.14